김경옥 어머님 인터뷰
2024년 8월 13일, 대전 문화동에 있는 카페에서 상아탑반 수업을 듣고 계신 ‘김경옥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산에서 자라 산을 보면 고향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하다는 ‘김경옥 씨’는 인터뷰 당일 아침에도 뒷산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긍정적인 말과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김경옥 씨는 역경과 고난도 서핑 하듯 파도에 몸을 맡겨 유연하게 대처해낼 수 있는 능력자다. 인터뷰 전 잡지 편찬의 목적에 대해 소개하고 ‘김경옥 씨’가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경옥: 김경옥!
진행자: 끝인가요?
김경옥: 소개를 뭘 어떻게 해야 돼요? 저는 먹는 건 다 좋아유. 지나고보니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었나봐. 아 음~ 그리고 여행가는 걸 최고 좋아해요.
진행자: 저한테 두 장의 사진 보내주신 걸 보니 최근에 바다를 놀러갔다 오셨더라고요.
김경옥: 이번 한 번만 갔게요. 그게 완도였는데 해변이 너무 좋았어요. 작년 휴가 때. 딴 데를 가 봐도 거기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유.
진행자: 어떤 점이 제일 좋았어요?
김경옥: 해변도 넓고 바닷가에 텐트 치는 데도 좋고 물도 잘 나오고.
진행자: 바다에 가시면 수영을 하세요?
김경옥: 튜브 갖고 놀아요. 그냥.
진행자: 남편분이랑 같이 튜브 끼고 노시는 건가요?
김경옥: 아저씨는 수영을 잘 해요.
진행자: 사진도 남편 분께서 찍어주신 거군요.
김경옥: 예. 맞아요. 여행은 시도 때도 없이 가유. 아무 때나 시간만 나면 가유. 바다 산 가리지 않고 가유. 좋아해유. 둘 다.
진행자: 나중에라도 꼭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김경옥: 이제 갈 거예유. 땅끝마을. 거기 아저씨랑 가기로 했어.
진행자: 땅끝마을은 왜 가고 싶으세요?
김경옥: 거기를 안가봤거든요. 가본 곳 중에 완도가 제일 좋았고 동해도 좋아요. 작년 봄에 동해 갔다왔어유.
진행자: 두 분 사이가 되게 좋으신가봐요.
김경옥: 그냥 그렇죠 뭐 사는 거 뭐. 이제 다 늙었으니까 그냥 사이좋게 사는겨~
진행자: 두 분 만남에 대해 이야기 더 들려주세요.
김경옥: 21살 때 만났어요. 4년 연애 하고 25살에 결혼을 했어요. 친구처럼 만났는데 집에서 갑자기 선 봐서 결혼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 사람만 못한 것 같어. 정이 좀 들었을 거 아녀유. 오래 만나보니까 말을 절대로 함부로 안 하는거야. 솔직히 말해서 그래서 결혼했어유
진행자: 지금은 어떠세요?
김경옥: 지금도 똑같어유. 처음이랑 지금하고 똑같은 것 같어유, 대하는 태도가 똑같아
진행자: 그래도 오래도록 같이 살다보니 이런 걸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점이 있나요?
김경옥: 있쥬. 살아보면 당연하죠.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고 살다보면 변하는 게 많아요. 그게 없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오래 살면 뭔가가 다 있어. 생판 남하고 같이 살래봐. 근데 그렇다고 때려치우면 안 돼. 살아봐야지.
진행자: 맞춰가면서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김경옥: 진짜 안 바뀌어도 그냥 살았으니 뭐라고 말해야 돼유. 사람이 모든 게 다 맞는 사람이 없어유. 한 가지는 안 맞는 게 분명히 있어유. 그런데 아이들 태어나면 함부로 못해요. 그래서 바깥일을 알려고 안 했어유. 알면 자존심 상해서 못살잖아. 모르는 게 낫죠. 그래야 아이들을 키울 수가 있죠. 완전히 맞는 사람이 없어유. 그리고 남자는 봐줘야댜. 안봐주면 안댜. 나중에는 엄마여 각시가 아니고.
진행자: 야학에 오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김경옥: 35년 정도 한 계가 있어유. 그 계원 언니가 그 전에 다녔다네. 저는 손자 셋을 10년 가까이 키웠어요. 손자 한 명을 다 키우고 나니까 딸이 시집 가더니 쌍둥이를 또 낳았네. 걔들을 또 몇 년 키웠더니 10년이 지났어유. 그래서 학교 갈 생각을 못했죠. 친구들이 옛날부터 거기 다니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가게 됐어요.
진행자: 원래부터 학교를 다니고 싶으셨던 거예요?
김경옥: 그건 말을 할 수가 없죠. 가슴에 늘 품고 있었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른거여. 방법을 몰랐던 거쥬. 어릴 때 집이 좀 뒤집어졌었어요. 아빠가 큰 농방을 대전에서 했었는데 옛날에는 순 나무만 썼어요. 크게 불이 났는데 나무니까 다 타지 뭐.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해갖고 땅 있는 것 까지 부도를 다 맞았다네. 그러다 예전에 시사 지냈잖아요. 시골에 그런 땅이 있었어유. 거기로 가게 됐어요. 우리 아기들만 데리고. 피난 간 거야 한 마디로. 엄마가 여기 살다가 시골로 가니까 농사일을 했을 거 아녜요. 엄마가 여기 아무것도 없고 난리가 나니까 우리 아기들 조그만 집 옆에 전답이 붙어서 거기서 밭일을 한 거예유. 그런데 엄마가 아파갖고 못 일어나서 학교를 못 보낸 거예요. 가려고 했는데 두 번을 못 갔어유. 그래도 그 시절엔 나중에라도 보내면 되는데 자기가 가르쳐야지 생각했대. 그래도 엄마가 좀 깨어있는 사람이었어. 당시 나를 가르쳤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학교만큼 되냐고 안 되쥬. 엄마가 가르치면 나는 애긴데도 그게 싫었어유. 싫더라고. 반발심이 생겼어요. 다들 학교 가는데 나는 이렇게 있으니까 말로 표현은 못했는데 속이 되게 창피했어요. 그때는 구구단을 줄줄이 다 외웠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서 해보려니까 입으로 안 나오더라고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까 배운지가 52년이나 된 거여. 너무 애기 때 배우고 안배운거여. 그러고 나서 조금 크니까 공장에 가서 일했어유. 그래갖고 그걸로 동생들 공부를 시킨겨. 나머지는 다 엄마 갖다 줬어. 돈만 벌면 시골에 다 갖다 줬어.
진행자: 형제자매가 어떻게 되세요??
김경옥: 육남매인데 둘째였어요. 첫째는 우리 언니. 우리 언니는 일을 안 했어요. 이상하게 돈을 안 벌더라고요. 나랑은 이게 달라. 사는 게 달라. 때 아닌 내가 또 언니 노릇을 지금까지 햐. 그게 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만. 동생들은 대학까지 다 갔어요. 저는 이 나이에 뭘 하겄어유. 지금 배워봐야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그런데도 야학에 가는 이유는 한 풀러 가는 거 그거 뿐이어유. 내가 이 나이에 돈을 벌겄어 뭘 하겄어유.
진행자: 막상 야학에 오니까 어떠셨어요?
김경옥: 이게 너무 좋은 거 있죠. 진짜 초등학교 다닌 거하고 중학교 시험 봐서 합격 했다는 거 그 기쁨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지금도 실감이 안 나유. 꿈꾸는 것 같아유. 그걸 안 해본 사람은 몰라유.
진행자: 바로바로 합격한 비결은 뭔가요?
김경옥: 별 것도 아니던데유. 저는 솔직히 말하면 조금 해야 될 줄 알았어유. 초등도 그렇고. 그런데 가서 하니까 그냥 되대. 놀랐어유. 초등학교 졸업 할 때. 근데 이번에는 솔직히 공부를 안했어유.
진행자: 야학 졸업 후 꿈이 있으신가요?
김경옥: 예쁜 글씨 배우고 싶어유. 손이 안 구부러져서 글씨 쓰는 연습을 잘 못하니까 글씨가 이상해서 글을 잘 안 써요. 제가 어디 가도 글씨를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래도 졸업하면 예쁜 글씨 쓰는 데를 다닐 거예요. 글씨만 예쁘게 쓰면 바랄 게 없어요. 아무 소원도 없어유.
진행자: 예쁜 글씨 배우는 곳을 따로 알아두신 건가요?
김경옥: 몰라유
진행자: 졸업 후 차차 알아보실 계획이군요. 예쁜 글씨를 쓰게 되면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김경옥: 어디 가면 글씨를 잘 못쓰니까 위축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데 가서 당당하게 글을 쓰고 싶어요. 소원은 이것밖에 없어. 글씨 잘 쓰는 거. 이게 부자처럼 잘 살지는 못해도 평생 살면서 가슴에 맺힌 거 풀고 싶어요. 다른 건 운동 열심히 하고 밥이나 잘 해먹고 건강하게 잘 살면 되지. 나이 70이 다 되어서 뭘 하겠어유.
진행자: 주로 어떤 운동을 하세요?
김경옥: 산에 가유. 유일한 취미생활이에유. 너무 좋은거여. 젊었을 때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힘든 때 꼭 산에 갔어유. 그럼 괜찮아졌어요. 우리 아저씨가 예전에 사업한다고 막 그랬어요. 젊었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산에 갔어유. 당시는 사람들이 산을 잘 안다녔어유. 그래도 혼자서 갔어유. 전경이 탁 펼쳐진 걸 보면 좋았어요.
진행자: 최근에는 산에 언제 다녀오셨어요?
김경옥: 오늘도 뒷산 다녀왔어유. 유일한 취미생활이에유. 가면 너무 좋아 마음이. 안정돼.
진행자: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체력이 안 좋아서 너무 힘들까봐 걱정이에요.
김경옥: 조금씩 가야쥬. 그게 산에 갔을 때 꼭 몸만 좋아지는 건 아녜유. 정신도 강해져요. 나중에 살다보면 어려움 닥칠 때가 다 있어요. 그거 없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런 때 가면 이겨내기가 쉬워요.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정상에 도착하면 엄청 좋고 그냥 가서 풀 보고 물 흐르는 것만 봐도 엄청 좋아유.
진행자: 산이 그렇게 좋은 이유는 뭘까요??
김경옥: 내가 애기 때 산 밑에서 컸잖아유. 고향 같고 편안하기도 해요. 등산로가 잘 갖춰진 산이든 뒷산이든 다 좋아유. 풀도 예뻐. 고사리 같은 거 뽑아서 삶아서 담가놨다가 하루 뒤에 해먹기도 해요.
진행자: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 여행도 자주 다니시는거 보면 되게 젊게 사시는 것 같아요.
김경옥: 아녜요. 일 엄청 했어유. 지금 손 놓은 거예요. 오죽하면 손이 이렇게 잘 안 굽겠어요. 하도 일 해서. 결혼하기 전에는 8년간 공장 일을 했고 결혼 후에는 십 몇 년 동안 했어유. 결혼을 하니까 아저씨가 시내버스를 했는데 혼자 벌어오니까 시원찮잖아? 애기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그 회사 사모가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더니 일 좀 해달랴. 옷 만드는 회사였어유. 아침 9시에 실으러 온댜. 9시부터 5시까지 하고 5시에 또 다시 실어다준댜. 돈 얼마 줄거냐니까 7000원 준댜. 옛날에. 그때가 언제냐면 35년전에. 그래서 내가 만원씩 달라고 하니까 그런댜. 그때 큰 시누가 놀았어유. 그 뒤로 애기를 갖다가 큰 시누네 대문에 갖다놓고 고모랑 놀아 하고 도망갔어.(웃음) 그런데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좋은거여. 애기들 먹이고 입히고. 돈을 한 번 벌게 되니까 계속 벌게 되더라고. 그런 게 생기대 또? 그 전에는 공장 일 해서 돈을 벌면 엄마 다 줬잖아유. 시집올 때 돈 조금 가져온 거 빼면 없쥬. 남동생은 엄청 잘 됐어유. 남동생 하나 있는데 3급 공무원 됐어유.
진행자: 많이 뿌듯하셨겠어요. 누나한테 효도해야겠는데요?
김경옥: 근데 그거 모르더라고요. 고마움을 모르더라고요. 속에는 있나 모르겠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돈이 조금 남았었어요. 그거 딱 나눠주더라고요. 똑같이. 가만히 보니까 고마움을 몰러. 말이라도 하면 좋잖아유. 그런데 그걸 모르고 당연한줄 알아서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동생들은 1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밥 먹고 해유. 여동생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요. ‘그냥 자기 잘 살고 어디가서 누구 누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 거기까지만’이라고. ‘그냥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괜찮아유. 나쁜 일 한 게 아니라. 그래서 모든 세상 살이가 내가 이렇게 사는 게 허튼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 자식들이 잘 된 것 같아요.
진행자: 아드님과 따님 한 분씩 있으신 거죠?
김경옥: 예. 아들은 북극 가있어요(웃음) 10월 초에 와요. 북극 갔다가 오면 여기 두어 달 있다가 다시 남극 가요. 그러다 다시 여기 왔다가 북극 또 가요. 그런 걸 연구한다고 하대요? 배가 가면 드론으로 찍는대요. 아들이 드론을 해요. 그걸 찍고 물도 뜨고 해서 그걸 검사한대요. 어느 날은 아들이 장비로 찍고 있는데 곰 가족이 왔대요.(웃음) (사진을 보여주며) 북극 곰. 온 가족이 다 왔댜. 그렇게 안 춥대요 살만하대요. 그런데 남극은 엄청 춥대요. 남극은 단단히 입고 안 나가면 얼어죽는댜. 영하70도까지 간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모든 게 내가 잘 살면 아이들도 잘 사는 것 같아요. 특히 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엄마 아빠 반듯하면 그 힘이 자식들에서 손자손녀들한테까지 반드시 내려가요. 딸은 학원 수학 선생님이에요. 엄마 밑에서 애들이 그렇게 잘 커주니 고맙죠. 딸은 아기 때 영리하더라고요. 그걸 잡아서 엄마가 공부를 잘 시켰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걸 못한 게 한이 맺혀요.
진행자: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김경옥: 그냥 열심히 산 것 같아. 그러고 결혼해서는 애들을 쳐다보니까 애들 눈이 반짝반짝 해서 엄마만 쳐다보는 거야.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뒷바라지하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나이 50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다 크고 어느 날 보니까 내 나이가 50이 되었어요.
진행자: 매번 수업 할 때 긍정적인 언어표현을 많이 사용하셨어요. ‘안 돼도 괜찮다.’, ‘다음에 또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요.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일 수가 있나요?
김경옥: 안된다고 속 썩으면 속 썩어 죽어. 안 되는 거 갖고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속 썩어 죽어. 안 되면 다시 해야쥬. 근데 그러니까 이렇게 살이 찌쥬. 뚱뚱한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안하니까 살 찌는겨. 어지간하면 대충 넘어가야쥬.
진행자: 이제 방학인데 뭐하고 지내세요?
김경옥: 제가 수학을 못해서. 방학하기 전에 박스 안에 보니까 수학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갖고왔어유. 수학을 하도 못해서. 그래서 그걸로 공부해요 집에서. 보니까 진짜 잘 만들어놨어요 책을. 어느 정도 알아야 공부가 되는데 이건 생판 모르니까. 보충수업해요. 책 보고 혼자 해유.
진행자: 따님이 수학선생님이셔서 모르는 거 알려달라고 하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김경옥: 안 그래유. 쌍둥이도 키우고 일도 하니까 시간이 없어유. ‘야 이것좀 가르쳐줘라’ 하면 ‘엄마 시간이 없어. 엄마 못 가르쳐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이래유. 근데 내가 첨에 초등 반에서 수학을 할 때 교감선생님이 칠판을 손으로 가려가면서 수업을 하셨어유.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누가 그렇게까지 수업을 해주겠어유. 우리가 너무 못하니까 손으로 가려가면서 애기한테 하듯이 가르치는 거예유. 너무 고맙쥬. 세상에 누가 손으로 가려가면서 가르치겠어유.
진행자: 매일 지치지 않고 야학에 오시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김경옥: 밥 먹고 치우고 학교 가야지 그 생각만 하고 있는데요 뭘. 선생님 배우는 건 너무 재밌어유. 시험만 안 보면 좋겄어유. 그냥 학교 가고 배우는 것만 했으면 좋겄어유. 너무 좋은 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유.
진행자: 내가 들으면 좋은 말과 들으면 싫은 말 하나씩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김경옥: 친구들이 저 학교 안다닌 걸 몰랐어유. 근데도 제가 총무같은 걸 도맡았어유. 나중에 알고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 어떻게 그렇게 똘똘하니?” (웃음) 그것도 학교 가는 바람에 탄로가 났어유. 깜짝 놀랐대유. 그 말이 제일 좋았어유. 듣기 싫은 말은 별로 없는디. 학교에서 깔충깔충한 언니가 있거든요. 제가 소리를 몇 번 질렀어유. 소문이 쫙 났겄지?(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시험 보는 데도 내가 다 알면서 자기들을 안 가르쳐준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있쥬. 그래갖고 내가 나도 모른다고 내가 알면 안 가르쳐주겠냐고 했었죠. 그때 그 말이 안 좋았어유.
진행자: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김경옥: 어린 시절에요? 되게 씩씩 했어요. 너무 씩씩하고 용감하게 잘 컸어요. 씩씩했어요. 아빠가 없이 엄마하고 시골에 갑자기 갔으니 동네 애들이 언니를 막 때리는 거야 내가 쫓아가서 논에다 확 꽂아버렸어(웃음) 후회되는 일도 없어유. 학교 안다닌 거 빼면 후회가 없어유 아기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유. 씩씩한 건 타고났어유. 실패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유. 특별한 게 있어야 실패를 하지. 고등학교 시험 떨어진거 말고 실패랄 게 없었어유. 그냥 되게 씩씩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유.
김경옥 어머님 인터뷰
2024년 8월 13일, 대전 문화동에 있는 카페에서 상아탑반 수업을 듣고 계신 ‘김경옥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산에서 자라 산을 보면 고향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하다는 ‘김경옥 씨’는 인터뷰 당일 아침에도 뒷산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긍정적인 말과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김경옥 씨는 역경과 고난도 서핑 하듯 파도에 몸을 맡겨 유연하게 대처해낼 수 있는 능력자다. 인터뷰 전 잡지 편찬의 목적에 대해 소개하고 ‘김경옥 씨’가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경옥: 김경옥!
진행자: 끝인가요?
김경옥: 소개를 뭘 어떻게 해야 돼요? 저는 먹는 건 다 좋아유. 지나고보니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었나봐. 아 음~ 그리고 여행가는 걸 최고 좋아해요.
진행자: 저한테 두 장의 사진 보내주신 걸 보니 최근에 바다를 놀러갔다 오셨더라고요.
김경옥: 이번 한 번만 갔게요. 그게 완도였는데 해변이 너무 좋았어요. 작년 휴가 때. 딴 데를 가 봐도 거기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유.
진행자: 어떤 점이 제일 좋았어요?
김경옥: 해변도 넓고 바닷가에 텐트 치는 데도 좋고 물도 잘 나오고.
진행자: 바다에 가시면 수영을 하세요?
김경옥: 튜브 갖고 놀아요. 그냥.
진행자: 남편분이랑 같이 튜브 끼고 노시는 건가요?
김경옥: 아저씨는 수영을 잘 해요.
진행자: 사진도 남편 분께서 찍어주신 거군요.
김경옥: 예. 맞아요. 여행은 시도 때도 없이 가유. 아무 때나 시간만 나면 가유. 바다 산 가리지 않고 가유. 좋아해유. 둘 다.
진행자: 나중에라도 꼭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김경옥: 이제 갈 거예유. 땅끝마을. 거기 아저씨랑 가기로 했어.
진행자: 땅끝마을은 왜 가고 싶으세요?
김경옥: 거기를 안가봤거든요. 가본 곳 중에 완도가 제일 좋았고 동해도 좋아요. 작년 봄에 동해 갔다왔어유.
진행자: 두 분 사이가 되게 좋으신가봐요.
김경옥: 그냥 그렇죠 뭐 사는 거 뭐. 이제 다 늙었으니까 그냥 사이좋게 사는겨~
진행자: 두 분 만남에 대해 이야기 더 들려주세요.
김경옥: 21살 때 만났어요. 4년 연애 하고 25살에 결혼을 했어요. 친구처럼 만났는데 집에서 갑자기 선 봐서 결혼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 사람만 못한 것 같어. 정이 좀 들었을 거 아녀유. 오래 만나보니까 말을 절대로 함부로 안 하는거야. 솔직히 말해서 그래서 결혼했어유
진행자: 지금은 어떠세요?
김경옥: 지금도 똑같어유. 처음이랑 지금하고 똑같은 것 같어유, 대하는 태도가 똑같아
진행자: 그래도 오래도록 같이 살다보니 이런 걸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점이 있나요?
김경옥: 있쥬. 살아보면 당연하죠.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고 살다보면 변하는 게 많아요. 그게 없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오래 살면 뭔가가 다 있어. 생판 남하고 같이 살래봐. 근데 그렇다고 때려치우면 안 돼. 살아봐야지.
진행자: 맞춰가면서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김경옥: 진짜 안 바뀌어도 그냥 살았으니 뭐라고 말해야 돼유. 사람이 모든 게 다 맞는 사람이 없어유. 한 가지는 안 맞는 게 분명히 있어유. 그런데 아이들 태어나면 함부로 못해요. 그래서 바깥일을 알려고 안 했어유. 알면 자존심 상해서 못살잖아. 모르는 게 낫죠. 그래야 아이들을 키울 수가 있죠. 완전히 맞는 사람이 없어유. 그리고 남자는 봐줘야댜. 안봐주면 안댜. 나중에는 엄마여 각시가 아니고.
진행자: 야학에 오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김경옥: 35년 정도 한 계가 있어유. 그 계원 언니가 그 전에 다녔다네. 저는 손자 셋을 10년 가까이 키웠어요. 손자 한 명을 다 키우고 나니까 딸이 시집 가더니 쌍둥이를 또 낳았네. 걔들을 또 몇 년 키웠더니 10년이 지났어유. 그래서 학교 갈 생각을 못했죠. 친구들이 옛날부터 거기 다니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가게 됐어요.
진행자: 원래부터 학교를 다니고 싶으셨던 거예요?
김경옥: 그건 말을 할 수가 없죠. 가슴에 늘 품고 있었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른거여. 방법을 몰랐던 거쥬. 어릴 때 집이 좀 뒤집어졌었어요. 아빠가 큰 농방을 대전에서 했었는데 옛날에는 순 나무만 썼어요. 크게 불이 났는데 나무니까 다 타지 뭐.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해갖고 땅 있는 것 까지 부도를 다 맞았다네. 그러다 예전에 시사 지냈잖아요. 시골에 그런 땅이 있었어유. 거기로 가게 됐어요. 우리 아기들만 데리고. 피난 간 거야 한 마디로. 엄마가 여기 살다가 시골로 가니까 농사일을 했을 거 아녜요. 엄마가 여기 아무것도 없고 난리가 나니까 우리 아기들 조그만 집 옆에 전답이 붙어서 거기서 밭일을 한 거예유. 그런데 엄마가 아파갖고 못 일어나서 학교를 못 보낸 거예요. 가려고 했는데 두 번을 못 갔어유. 그래도 그 시절엔 나중에라도 보내면 되는데 자기가 가르쳐야지 생각했대. 그래도 엄마가 좀 깨어있는 사람이었어. 당시 나를 가르쳤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학교만큼 되냐고 안 되쥬. 엄마가 가르치면 나는 애긴데도 그게 싫었어유. 싫더라고. 반발심이 생겼어요. 다들 학교 가는데 나는 이렇게 있으니까 말로 표현은 못했는데 속이 되게 창피했어요. 그때는 구구단을 줄줄이 다 외웠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서 해보려니까 입으로 안 나오더라고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까 배운지가 52년이나 된 거여. 너무 애기 때 배우고 안배운거여. 그러고 나서 조금 크니까 공장에 가서 일했어유. 그래갖고 그걸로 동생들 공부를 시킨겨. 나머지는 다 엄마 갖다 줬어. 돈만 벌면 시골에 다 갖다 줬어.
진행자: 형제자매가 어떻게 되세요??
김경옥: 육남매인데 둘째였어요. 첫째는 우리 언니. 우리 언니는 일을 안 했어요. 이상하게 돈을 안 벌더라고요. 나랑은 이게 달라. 사는 게 달라. 때 아닌 내가 또 언니 노릇을 지금까지 햐. 그게 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만. 동생들은 대학까지 다 갔어요. 저는 이 나이에 뭘 하겄어유. 지금 배워봐야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그런데도 야학에 가는 이유는 한 풀러 가는 거 그거 뿐이어유. 내가 이 나이에 돈을 벌겄어 뭘 하겄어유.
진행자: 막상 야학에 오니까 어떠셨어요?
김경옥: 이게 너무 좋은 거 있죠. 진짜 초등학교 다닌 거하고 중학교 시험 봐서 합격 했다는 거 그 기쁨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지금도 실감이 안 나유. 꿈꾸는 것 같아유. 그걸 안 해본 사람은 몰라유.
진행자: 바로바로 합격한 비결은 뭔가요?
김경옥: 별 것도 아니던데유. 저는 솔직히 말하면 조금 해야 될 줄 알았어유. 초등도 그렇고. 그런데 가서 하니까 그냥 되대. 놀랐어유. 초등학교 졸업 할 때. 근데 이번에는 솔직히 공부를 안했어유.
진행자: 야학 졸업 후 꿈이 있으신가요?
김경옥: 예쁜 글씨 배우고 싶어유. 손이 안 구부러져서 글씨 쓰는 연습을 잘 못하니까 글씨가 이상해서 글을 잘 안 써요. 제가 어디 가도 글씨를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래도 졸업하면 예쁜 글씨 쓰는 데를 다닐 거예요. 글씨만 예쁘게 쓰면 바랄 게 없어요. 아무 소원도 없어유.
진행자: 예쁜 글씨 배우는 곳을 따로 알아두신 건가요?
김경옥: 몰라유
진행자: 졸업 후 차차 알아보실 계획이군요. 예쁜 글씨를 쓰게 되면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김경옥: 어디 가면 글씨를 잘 못쓰니까 위축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데 가서 당당하게 글을 쓰고 싶어요. 소원은 이것밖에 없어. 글씨 잘 쓰는 거. 이게 부자처럼 잘 살지는 못해도 평생 살면서 가슴에 맺힌 거 풀고 싶어요. 다른 건 운동 열심히 하고 밥이나 잘 해먹고 건강하게 잘 살면 되지. 나이 70이 다 되어서 뭘 하겠어유.
진행자: 주로 어떤 운동을 하세요?
김경옥: 산에 가유. 유일한 취미생활이에유. 너무 좋은거여. 젊었을 때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힘든 때 꼭 산에 갔어유. 그럼 괜찮아졌어요. 우리 아저씨가 예전에 사업한다고 막 그랬어요. 젊었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산에 갔어유. 당시는 사람들이 산을 잘 안다녔어유. 그래도 혼자서 갔어유. 전경이 탁 펼쳐진 걸 보면 좋았어요.
진행자: 최근에는 산에 언제 다녀오셨어요?
김경옥: 오늘도 뒷산 다녀왔어유. 유일한 취미생활이에유. 가면 너무 좋아 마음이. 안정돼.
진행자: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체력이 안 좋아서 너무 힘들까봐 걱정이에요.
김경옥: 조금씩 가야쥬. 그게 산에 갔을 때 꼭 몸만 좋아지는 건 아녜유. 정신도 강해져요. 나중에 살다보면 어려움 닥칠 때가 다 있어요. 그거 없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런 때 가면 이겨내기가 쉬워요.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정상에 도착하면 엄청 좋고 그냥 가서 풀 보고 물 흐르는 것만 봐도 엄청 좋아유.
진행자: 산이 그렇게 좋은 이유는 뭘까요??
김경옥: 내가 애기 때 산 밑에서 컸잖아유. 고향 같고 편안하기도 해요. 등산로가 잘 갖춰진 산이든 뒷산이든 다 좋아유. 풀도 예뻐. 고사리 같은 거 뽑아서 삶아서 담가놨다가 하루 뒤에 해먹기도 해요.
진행자: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 여행도 자주 다니시는거 보면 되게 젊게 사시는 것 같아요.
김경옥: 아녜요. 일 엄청 했어유. 지금 손 놓은 거예요. 오죽하면 손이 이렇게 잘 안 굽겠어요. 하도 일 해서. 결혼하기 전에는 8년간 공장 일을 했고 결혼 후에는 십 몇 년 동안 했어유. 결혼을 하니까 아저씨가 시내버스를 했는데 혼자 벌어오니까 시원찮잖아? 애기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그 회사 사모가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더니 일 좀 해달랴. 옷 만드는 회사였어유. 아침 9시에 실으러 온댜. 9시부터 5시까지 하고 5시에 또 다시 실어다준댜. 돈 얼마 줄거냐니까 7000원 준댜. 옛날에. 그때가 언제냐면 35년전에. 그래서 내가 만원씩 달라고 하니까 그런댜. 그때 큰 시누가 놀았어유. 그 뒤로 애기를 갖다가 큰 시누네 대문에 갖다놓고 고모랑 놀아 하고 도망갔어.(웃음) 그런데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좋은거여. 애기들 먹이고 입히고. 돈을 한 번 벌게 되니까 계속 벌게 되더라고. 그런 게 생기대 또? 그 전에는 공장 일 해서 돈을 벌면 엄마 다 줬잖아유. 시집올 때 돈 조금 가져온 거 빼면 없쥬. 남동생은 엄청 잘 됐어유. 남동생 하나 있는데 3급 공무원 됐어유.
진행자: 많이 뿌듯하셨겠어요. 누나한테 효도해야겠는데요?
김경옥: 근데 그거 모르더라고요. 고마움을 모르더라고요. 속에는 있나 모르겠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돈이 조금 남았었어요. 그거 딱 나눠주더라고요. 똑같이. 가만히 보니까 고마움을 몰러. 말이라도 하면 좋잖아유. 그런데 그걸 모르고 당연한줄 알아서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동생들은 1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밥 먹고 해유. 여동생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요. ‘그냥 자기 잘 살고 어디가서 누구 누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 거기까지만’이라고. ‘그냥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괜찮아유. 나쁜 일 한 게 아니라. 그래서 모든 세상 살이가 내가 이렇게 사는 게 허튼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 자식들이 잘 된 것 같아요.
진행자: 아드님과 따님 한 분씩 있으신 거죠?
김경옥: 예. 아들은 북극 가있어요(웃음) 10월 초에 와요. 북극 갔다가 오면 여기 두어 달 있다가 다시 남극 가요. 그러다 다시 여기 왔다가 북극 또 가요. 그런 걸 연구한다고 하대요? 배가 가면 드론으로 찍는대요. 아들이 드론을 해요. 그걸 찍고 물도 뜨고 해서 그걸 검사한대요. 어느 날은 아들이 장비로 찍고 있는데 곰 가족이 왔대요.(웃음) (사진을 보여주며) 북극 곰. 온 가족이 다 왔댜. 그렇게 안 춥대요 살만하대요. 그런데 남극은 엄청 춥대요. 남극은 단단히 입고 안 나가면 얼어죽는댜. 영하70도까지 간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모든 게 내가 잘 살면 아이들도 잘 사는 것 같아요. 특히 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엄마 아빠 반듯하면 그 힘이 자식들에서 손자손녀들한테까지 반드시 내려가요. 딸은 학원 수학 선생님이에요. 엄마 밑에서 애들이 그렇게 잘 커주니 고맙죠. 딸은 아기 때 영리하더라고요. 그걸 잡아서 엄마가 공부를 잘 시켰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걸 못한 게 한이 맺혀요.
진행자: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김경옥: 그냥 열심히 산 것 같아. 그러고 결혼해서는 애들을 쳐다보니까 애들 눈이 반짝반짝 해서 엄마만 쳐다보는 거야.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뒷바라지하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나이 50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다 크고 어느 날 보니까 내 나이가 50이 되었어요.
진행자: 매번 수업 할 때 긍정적인 언어표현을 많이 사용하셨어요. ‘안 돼도 괜찮다.’, ‘다음에 또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요.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일 수가 있나요?
김경옥: 안된다고 속 썩으면 속 썩어 죽어. 안 되는 거 갖고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속 썩어 죽어. 안 되면 다시 해야쥬. 근데 그러니까 이렇게 살이 찌쥬. 뚱뚱한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안하니까 살 찌는겨. 어지간하면 대충 넘어가야쥬.
진행자: 이제 방학인데 뭐하고 지내세요?
김경옥: 제가 수학을 못해서. 방학하기 전에 박스 안에 보니까 수학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갖고왔어유. 수학을 하도 못해서. 그래서 그걸로 공부해요 집에서. 보니까 진짜 잘 만들어놨어요 책을. 어느 정도 알아야 공부가 되는데 이건 생판 모르니까. 보충수업해요. 책 보고 혼자 해유.
진행자: 따님이 수학선생님이셔서 모르는 거 알려달라고 하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김경옥: 안 그래유. 쌍둥이도 키우고 일도 하니까 시간이 없어유. ‘야 이것좀 가르쳐줘라’ 하면 ‘엄마 시간이 없어. 엄마 못 가르쳐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이래유. 근데 내가 첨에 초등 반에서 수학을 할 때 교감선생님이 칠판을 손으로 가려가면서 수업을 하셨어유.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누가 그렇게까지 수업을 해주겠어유. 우리가 너무 못하니까 손으로 가려가면서 애기한테 하듯이 가르치는 거예유. 너무 고맙쥬. 세상에 누가 손으로 가려가면서 가르치겠어유.
진행자: 매일 지치지 않고 야학에 오시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김경옥: 밥 먹고 치우고 학교 가야지 그 생각만 하고 있는데요 뭘. 선생님 배우는 건 너무 재밌어유. 시험만 안 보면 좋겄어유. 그냥 학교 가고 배우는 것만 했으면 좋겄어유. 너무 좋은 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유.
진행자: 내가 들으면 좋은 말과 들으면 싫은 말 하나씩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김경옥: 친구들이 저 학교 안다닌 걸 몰랐어유. 근데도 제가 총무같은 걸 도맡았어유. 나중에 알고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 어떻게 그렇게 똘똘하니?” (웃음) 그것도 학교 가는 바람에 탄로가 났어유. 깜짝 놀랐대유. 그 말이 제일 좋았어유. 듣기 싫은 말은 별로 없는디. 학교에서 깔충깔충한 언니가 있거든요. 제가 소리를 몇 번 질렀어유. 소문이 쫙 났겄지?(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시험 보는 데도 내가 다 알면서 자기들을 안 가르쳐준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있쥬. 그래갖고 내가 나도 모른다고 내가 알면 안 가르쳐주겠냐고 했었죠. 그때 그 말이 안 좋았어유.
진행자: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김경옥: 어린 시절에요? 되게 씩씩 했어요. 너무 씩씩하고 용감하게 잘 컸어요. 씩씩했어요. 아빠가 없이 엄마하고 시골에 갑자기 갔으니 동네 애들이 언니를 막 때리는 거야 내가 쫓아가서 논에다 확 꽂아버렸어(웃음) 후회되는 일도 없어유. 학교 안다닌 거 빼면 후회가 없어유 아기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유. 씩씩한 건 타고났어유. 실패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유. 특별한 게 있어야 실패를 하지. 고등학교 시험 떨어진거 말고 실패랄 게 없었어유. 그냥 되게 씩씩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