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올라가더라
난 태어나 아홉 해를 사는 동안 나고 자란 경남 울주군 외에 경주에 가 본 것이 타지로의 여행이 전부인 농촌 아이였다. 그런 내게 부산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말씀은 의아함 자체였다.
'부산 갔디만은 방이 올라가더래이. 기계형님하고 아노형님하고 여러 사람들이 방에 드가가 문 닫고 올라가더라. 이따가 내가 들어간 방도 올라가더라.'
'방이 올라간다', 당최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다. 초가지붕 아래 흙벽이 둘러쳐지고 구들이 놓인 방이 내가 알고 있는 방의 전부인데, '방이 올라간다'라니, 마당에 붙어 있는 방이 어찌 올라가지? 싶어 앉아서 벽과 천장을 봐도, 누워서 벽을 봐도 도대체 어찌 방이 올라간다는 거지 싶다. 우리 방은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는데...
1970년 가을걷이를 끝내고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부산 나들이를 했고, 용두산공원에 가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올라가는 방'이 엘리베이터였던 거다. 엘리베이터, 그래 '올라가는 방', 맞다.
46년 전에 엘리베이터라는 신문물을 처음 접하고 신기해 하며 내게 전하시던 울 어머니. 나도 38년 전이던 17살에 드디어 어머니께서 올라가는 방이라 일컫던 '움직이는 방'을 용두산공원에서 만났다. 좁다란 공간에 예닐곱 명이 탔고,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자 스르륵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신세계였다. 순식간에 건물 꼭대기로 데려다 놔 주는 첨단장비가 주는 기쁨과 함께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올라가는 방'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홉 해를 산 나의 세계만으로 '올라가는 방'을 이해하려 하니 안 됐던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나는 매일 '올라가는 방'을 탄다.
살아계시면 98세인 어머니는 이제 하늘에서 손오공처럼 구름으로 된 '올라가는 방'을 타시겠지?
방이 올라가더라
난 태어나 아홉 해를 사는 동안 나고 자란 경남 울주군 외에 경주에 가 본 것이 타지로의 여행이 전부인 농촌 아이였다. 그런 내게 부산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말씀은 의아함 자체였다.
'부산 갔디만은 방이 올라가더래이. 기계형님하고 아노형님하고 여러 사람들이 방에 드가가 문 닫고 올라가더라. 이따가 내가 들어간 방도 올라가더라.'
'방이 올라간다', 당최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다. 초가지붕 아래 흙벽이 둘러쳐지고 구들이 놓인 방이 내가 알고 있는 방의 전부인데, '방이 올라간다'라니, 마당에 붙어 있는 방이 어찌 올라가지? 싶어 앉아서 벽과 천장을 봐도, 누워서 벽을 봐도 도대체 어찌 방이 올라간다는 거지 싶다. 우리 방은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는데...
1970년 가을걷이를 끝내고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부산 나들이를 했고, 용두산공원에 가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올라가는 방'이 엘리베이터였던 거다. 엘리베이터, 그래 '올라가는 방', 맞다.
46년 전에 엘리베이터라는 신문물을 처음 접하고 신기해 하며 내게 전하시던 울 어머니. 나도 38년 전이던 17살에 드디어 어머니께서 올라가는 방이라 일컫던 '움직이는 방'을 용두산공원에서 만났다. 좁다란 공간에 예닐곱 명이 탔고,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자 스르륵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신세계였다. 순식간에 건물 꼭대기로 데려다 놔 주는 첨단장비가 주는 기쁨과 함께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올라가는 방'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홉 해를 산 나의 세계만으로 '올라가는 방'을 이해하려 하니 안 됐던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나는 매일 '올라가는 방'을 탄다.
살아계시면 98세인 어머니는 이제 하늘에서 손오공처럼 구름으로 된 '올라가는 방'을 타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