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 대한 관념의 변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데미안 -
요즘과는 달리 이렇다 할 성교육이 없었던 유년 및 청소년기를 거쳤던 나에게 있어 성(性)에 눈을 떠가는 과정은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하는 투쟁과 닮아 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아주 단편적인 찰나의 기억들을 머릿속에 안고 산다. 이성(異性)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나 또한 정말 사실에 입각한 기억인지 혹은 내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한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만 허름한 단독 주택에 세 들어 살던 4살 언저리의 기억인 것 같다. 상대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 역시 없다. 아마 동네에 같이 살던 어떤 여자아이였을 게다. 머리가 길고 얼굴이 하얀, 예쁘장한 아이였다고 생각되지만 이 부분은 분명 나의 뇌에서 적절히 조작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둘은 처마 밑에 앉아 소꿉놀이를 한다. 나는 아빠가 되고, 그 여자아이는 엄마가 된다. 모래로 밥도 짓고,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다 반찬도 만들어 먹는다. 나는 회사로 출근하고 여자아이는 집 청소를 한다. 그러다 여자아이가 아프게 된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다시 병원의 의사가 된다. 여자아이가 내원하고 청진기를 가슴부위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나는 말한다. 심한 병에 걸렸으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여자아이의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에 주시 놓는 시늉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다. 왼쪽 가슴에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이름표도 달았다. 어머니가 사주신 가장 멋진 옷을 입고(그러나 너무 커서 불편하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운동장에 집결해 있다. 많은 부모님들이 오셨고, 나의 어머니도 오셔서 내가 잘 따라하는지 지켜보고 계시니 마음이 놓인다. 선생님께서는 반에 들어가기 전에 짝을 정해주신다고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신장 크기순으로 정렬할 것을 지시한다. 우리들은 나름 어림짐작으로 서로의 신장을 확인하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는 반복하며 남학생들의 줄을 만들었다. 그 순간 나의 눈에 한 여학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키가 상당히 컸다. 나는 물론이고 보통의 남학생들보다도 더 컸다. 호리호리한 외모에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으며,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은 부드러워보였다. 음! 어떻게든 뒤로 가야 했다. 멈칫 멈칫 나보다도 큰 아이들을 내 앞으로 밀어내며 그 여학생의 옆에 설수 있도록 잔재주를 부렸다. 오호! 그 여학생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반으로 이동하겠다고 하시며, 짝끼리 손을 잡으라고 하신다. 머뭇거리는 여학생에게 말한다. “선생님이 손을 잡고 가라고 하시잖아!” 여학생의 손을 잡고 하나 둘 구령에 발맞춰 반으로 향한다.
여학생과 나의 책상 사이에 금이 그어졌다. 내 지우개가 그 금을 넘어서게 되면 여지없이 넘어선 부분이 잘려 여학생의 소유가 되었다. 나 또한 여학생의 연필이 넘어오면 넘어온 만큼 잘라버렸다. 우리는 서로 씩씩대며 서로를 미워했다. 왜 미웠는지 모르는데 서로를 그렇게 미워했다. 논리 정연한 그녀의 말솜씨는 나를 항상 당혹케 했고,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야기하는 그녀가 미워보였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왜 그토록 싫었는지 지금도 짐작하기 힘들다. ‘누구누구와 누구누구가 좋아한데요.’라는 놀림을 받기 싫어서 우리는 서로를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로를 멀리하면서도 서로가 좋았던 것 같다.
1학년이 끝날 즈음 파벌이 나뉘었다. 파벌은 부모님의 수입 정도에 따라 나뉜 것 같다. 1학년이 끝나는 시점에 한 여학생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남학생과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여학생이 초대되었다. 초대하신 부모님께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주신 것으로 기억되고 우리는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의 사내아이들이 그러하듯 좁은 방안에서의 놀이에 슬슬 실증을 느끼며 남학생들은 특유의 활발한 몸싸움을 시작하였다. 눈 가리고 사람 찾기 등의 게임을 하며 놀다가 무의식적인 나의 발길질이 한 여학생의 치구를 강타하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학생은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인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부끄러움이 컷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여학생들의 눈길이 발길질을 당한 여학생에게 쏠렸고, 곧바로 나에게는 증오의 눈빛으로 바뀌어 쏟아졌다. 아! 모임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내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끝이질 안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쯤이었을 것 같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항상 동네 야산으로 향했다. 놀거리는 풍부했다. 나뭇가지로 칼과 총을 만들고 진지를 구축하여 전쟁놀이도 하고, 어떤 때는 새총을 만들어 서로를 맞추며 놀기도 하였다(요즘 기준에서 보면 좀 험하게 놀았던 것 같다). 그 날도 서로 편을 먹고 전쟁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상대방 진지를 공략하기 위해 나는 수풀 사이를 조심조심 기어가고 있었다. 그때 둔덕 너머로 사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적군일까 생각했으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심스레 둔덕을 기어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벌거벗은 두 남녀가 숲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른 아저씨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어린 내 눈에는 사진기가 참으로 희한하여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곤 잠시 후 또 다른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내려가서 놀라’고 소리쳤다. 무서웠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서 우리 진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아저씨, 아줌마는 왜 산에서 벌거벗고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내 관심 밖이었다. 사진기가 참 좋아 보였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이라는 곳으로 서울에서도 참으로 외진 곳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집 주변에 밭이 있었고 배추며 무며 사람들이 재배하여 먹었었다.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그 곳에도 개발 바람이 불었고, 길이 넓어지고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공장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날도 친구들과 가방을 메고 하교 중이었다. 길거리에 돌멩이도 걷어차고, 강아지풀을 뜯어 장난도 치면서 오던 길이었다.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 보여 줄게 같이 갈래!” “뭔데.”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우리들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친구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 친구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한 공장의 담벼락이었고 두 번째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붙이며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주변에서 벽돌 2~3장을 쌓은 후 담 위로 공장내부를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려오면서 우리보고 차례로 공장 안을 보라고 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장 안을 처다보았다. 공장은 그 담벽락으로 부터 약 2m 아래 있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붕이 있었으며, 플라스틱 지붕이 깨진 틈으로 그 내부가 살짝 엿보였다. 아래에서는 여공 누나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공장 바닥의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몇 명의 누나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목욕하는 누나들의 모습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없었던 오묘한 기분과 생리현상이 내 몸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때! 좋지! 크크크.” “매일 이 시간대에 목욕을 해. 매일 볼 수 있지.” 우리를 안내한 그 친구가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아 원더우먼이 내 성기를 펠라티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그 어린 나이에 펠라티오라는 단어를 알 리 없다. 순화해서 표현했다.) 여성의 나체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그 이후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무엇이었다. 참 그 친구는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 첫 경험이 있은 후 나는 또 다시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 당시 폐품수집일은 우리 남학생들의 축제일이었다. 각 집에 쌓여있던 엄마들의 여성잡지들이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늘씬한 여성들이 팬티와 브래지어만 착용한 채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운이 좋은 날이면 흔히 빨간책이라고 불리던 3류 잡지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 잡지는 폐품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낱장으로 뜯겨져 한 두장씩 남학생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도 친구들에게 애걸하여 한 장을 얻고 집으로 가져와 몰래 숨겨보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 번은 그 사진 속의 남자가 내가 되고, 사진 속의 여자가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되는 꿈을 꿔보기도 했고, 직접 그림으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을 자고 있던 나는 강렬한 전율과 쾌감에 환희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팬티가 젖어있었다. 오줌은 아낸데, 끈적끈적한 액체가 꽤 많은 양 배출되어 있었다. 손으로 찍어 냄새를 맡아보니 역겨웠다. 첫 몽정이었다. 중학교 1학년 초반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계셨었다. 1년에 한두 번 귀국하셨는데, 아버지가 귀국하시는 날은 행복에 젖는 날이었다. 귀국하시면서 여러 가지 귀한 학용품이나 시계와 같은 선물을 사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선물을 사가지고 오셨다. 망원경이었다. 정말 멀리까지 또렷이 잘 보였다. 망원경은 낮에도 내 소중한 장난감이었지만, 밤에도 역시 소중한 친구였다. 그 당시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내가 살던 집은 3층이었고 내 방에서는 반대편 2층이나 1층이 잘 내다보였다. 그리고 내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의 현관문 옆은 화장실이었고,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있어 누군가가 밤에 불을 켜고 목욕을 하면 내 방에서 상대편의 상반신을 볼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여름이면 나는 내 방에 불을 끄고 망원경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자율학습이라는 것을 강제적으로 학교에서 시켰다. 뭐, 다들 하는 것이니깐 별 생각 없이 학과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학교 맨 꼭대기 층에 마련된 자율학습장으로 향했다. 그 나이또래 남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부하라고 시킨다고 공부만 하겠는가? 당연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 내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뒤돌아보며 나에게 묻는다. “너, 딸딸이 쳐봤냐?” 나는 멍 하였다. “그게 뭔데?” 나는 되물었다. “이런 맹추. 아직도 그것을 모르다니.” 친구는 나에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몸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면대 앞에 섰다. 그리고 친구가 설명해 준 방식대로 실행해 보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요도를 통해 정액이 분출되며 나는 쓰러질 뻔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다. 세면대에 의지하여 잠시 그렇게 있었다. 고등학교
성(性)에 대한 관념의 변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데미안 -
요즘과는 달리 이렇다 할 성교육이 없었던 유년 및 청소년기를 거쳤던 나에게 있어 성(性)에 눈을 떠가는 과정은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하는 투쟁과 닮아 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아주 단편적인 찰나의 기억들을 머릿속에 안고 산다. 이성(異性)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나 또한 정말 사실에 입각한 기억인지 혹은 내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한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만 허름한 단독 주택에 세 들어 살던 4살 언저리의 기억인 것 같다. 상대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 역시 없다. 아마 동네에 같이 살던 어떤 여자아이였을 게다. 머리가 길고 얼굴이 하얀, 예쁘장한 아이였다고 생각되지만 이 부분은 분명 나의 뇌에서 적절히 조작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둘은 처마 밑에 앉아 소꿉놀이를 한다. 나는 아빠가 되고, 그 여자아이는 엄마가 된다. 모래로 밥도 짓고,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다 반찬도 만들어 먹는다. 나는 회사로 출근하고 여자아이는 집 청소를 한다. 그러다 여자아이가 아프게 된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다시 병원의 의사가 된다. 여자아이가 내원하고 청진기를 가슴부위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나는 말한다. 심한 병에 걸렸으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여자아이의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에 주시 놓는 시늉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다. 왼쪽 가슴에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이름표도 달았다. 어머니가 사주신 가장 멋진 옷을 입고(그러나 너무 커서 불편하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운동장에 집결해 있다. 많은 부모님들이 오셨고, 나의 어머니도 오셔서 내가 잘 따라하는지 지켜보고 계시니 마음이 놓인다. 선생님께서는 반에 들어가기 전에 짝을 정해주신다고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신장 크기순으로 정렬할 것을 지시한다. 우리들은 나름 어림짐작으로 서로의 신장을 확인하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는 반복하며 남학생들의 줄을 만들었다. 그 순간 나의 눈에 한 여학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키가 상당히 컸다. 나는 물론이고 보통의 남학생들보다도 더 컸다. 호리호리한 외모에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으며,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은 부드러워보였다. 음! 어떻게든 뒤로 가야 했다. 멈칫 멈칫 나보다도 큰 아이들을 내 앞으로 밀어내며 그 여학생의 옆에 설수 있도록 잔재주를 부렸다. 오호! 그 여학생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반으로 이동하겠다고 하시며, 짝끼리 손을 잡으라고 하신다. 머뭇거리는 여학생에게 말한다. “선생님이 손을 잡고 가라고 하시잖아!” 여학생의 손을 잡고 하나 둘 구령에 발맞춰 반으로 향한다.
여학생과 나의 책상 사이에 금이 그어졌다. 내 지우개가 그 금을 넘어서게 되면 여지없이 넘어선 부분이 잘려 여학생의 소유가 되었다. 나 또한 여학생의 연필이 넘어오면 넘어온 만큼 잘라버렸다. 우리는 서로 씩씩대며 서로를 미워했다. 왜 미웠는지 모르는데 서로를 그렇게 미워했다. 논리 정연한 그녀의 말솜씨는 나를 항상 당혹케 했고,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야기하는 그녀가 미워보였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왜 그토록 싫었는지 지금도 짐작하기 힘들다. ‘누구누구와 누구누구가 좋아한데요.’라는 놀림을 받기 싫어서 우리는 서로를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로를 멀리하면서도 서로가 좋았던 것 같다.
1학년이 끝날 즈음 파벌이 나뉘었다. 파벌은 부모님의 수입 정도에 따라 나뉜 것 같다. 1학년이 끝나는 시점에 한 여학생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남학생과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여학생이 초대되었다. 초대하신 부모님께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주신 것으로 기억되고 우리는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의 사내아이들이 그러하듯 좁은 방안에서의 놀이에 슬슬 실증을 느끼며 남학생들은 특유의 활발한 몸싸움을 시작하였다. 눈 가리고 사람 찾기 등의 게임을 하며 놀다가 무의식적인 나의 발길질이 한 여학생의 치구를 강타하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학생은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인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부끄러움이 컷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여학생들의 눈길이 발길질을 당한 여학생에게 쏠렸고, 곧바로 나에게는 증오의 눈빛으로 바뀌어 쏟아졌다. 아! 모임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내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끝이질 안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쯤이었을 것 같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항상 동네 야산으로 향했다. 놀거리는 풍부했다. 나뭇가지로 칼과 총을 만들고 진지를 구축하여 전쟁놀이도 하고, 어떤 때는 새총을 만들어 서로를 맞추며 놀기도 하였다(요즘 기준에서 보면 좀 험하게 놀았던 것 같다). 그 날도 서로 편을 먹고 전쟁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상대방 진지를 공략하기 위해 나는 수풀 사이를 조심조심 기어가고 있었다. 그때 둔덕 너머로 사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적군일까 생각했으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심스레 둔덕을 기어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벌거벗은 두 남녀가 숲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른 아저씨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어린 내 눈에는 사진기가 참으로 희한하여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곤 잠시 후 또 다른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내려가서 놀라’고 소리쳤다. 무서웠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서 우리 진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아저씨, 아줌마는 왜 산에서 벌거벗고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내 관심 밖이었다. 사진기가 참 좋아 보였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이라는 곳으로 서울에서도 참으로 외진 곳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집 주변에 밭이 있었고 배추며 무며 사람들이 재배하여 먹었었다.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그 곳에도 개발 바람이 불었고, 길이 넓어지고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공장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날도 친구들과 가방을 메고 하교 중이었다. 길거리에 돌멩이도 걷어차고, 강아지풀을 뜯어 장난도 치면서 오던 길이었다.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 보여 줄게 같이 갈래!” “뭔데.”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우리들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친구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 친구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한 공장의 담벼락이었고 두 번째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붙이며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주변에서 벽돌 2~3장을 쌓은 후 담 위로 공장내부를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려오면서 우리보고 차례로 공장 안을 보라고 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장 안을 처다보았다. 공장은 그 담벽락으로 부터 약 2m 아래 있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붕이 있었으며, 플라스틱 지붕이 깨진 틈으로 그 내부가 살짝 엿보였다. 아래에서는 여공 누나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공장 바닥의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몇 명의 누나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목욕하는 누나들의 모습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없었던 오묘한 기분과 생리현상이 내 몸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때! 좋지! 크크크.” “매일 이 시간대에 목욕을 해. 매일 볼 수 있지.” 우리를 안내한 그 친구가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아 원더우먼이 내 성기를 펠라티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그 어린 나이에 펠라티오라는 단어를 알 리 없다. 순화해서 표현했다.) 여성의 나체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그 이후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무엇이었다. 참 그 친구는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 첫 경험이 있은 후 나는 또 다시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 당시 폐품수집일은 우리 남학생들의 축제일이었다. 각 집에 쌓여있던 엄마들의 여성잡지들이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늘씬한 여성들이 팬티와 브래지어만 착용한 채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운이 좋은 날이면 흔히 빨간책이라고 불리던 3류 잡지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 잡지는 폐품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낱장으로 뜯겨져 한 두장씩 남학생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도 친구들에게 애걸하여 한 장을 얻고 집으로 가져와 몰래 숨겨보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 번은 그 사진 속의 남자가 내가 되고, 사진 속의 여자가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되는 꿈을 꿔보기도 했고, 직접 그림으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을 자고 있던 나는 강렬한 전율과 쾌감에 환희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팬티가 젖어있었다. 오줌은 아낸데, 끈적끈적한 액체가 꽤 많은 양 배출되어 있었다. 손으로 찍어 냄새를 맡아보니 역겨웠다. 첫 몽정이었다. 중학교 1학년 초반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계셨었다. 1년에 한두 번 귀국하셨는데, 아버지가 귀국하시는 날은 행복에 젖는 날이었다. 귀국하시면서 여러 가지 귀한 학용품이나 시계와 같은 선물을 사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선물을 사가지고 오셨다. 망원경이었다. 정말 멀리까지 또렷이 잘 보였다. 망원경은 낮에도 내 소중한 장난감이었지만, 밤에도 역시 소중한 친구였다. 그 당시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내가 살던 집은 3층이었고 내 방에서는 반대편 2층이나 1층이 잘 내다보였다. 그리고 내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의 현관문 옆은 화장실이었고,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있어 누군가가 밤에 불을 켜고 목욕을 하면 내 방에서 상대편의 상반신을 볼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여름이면 나는 내 방에 불을 끄고 망원경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자율학습이라는 것을 강제적으로 학교에서 시켰다. 뭐, 다들 하는 것이니깐 별 생각 없이 학과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학교 맨 꼭대기 층에 마련된 자율학습장으로 향했다. 그 나이또래 남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부하라고 시킨다고 공부만 하겠는가? 당연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 내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뒤돌아보며 나에게 묻는다. “너, 딸딸이 쳐봤냐?” 나는 멍 하였다. “그게 뭔데?” 나는 되물었다. “이런 맹추. 아직도 그것을 모르다니.” 친구는 나에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몸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면대 앞에 섰다. 그리고 친구가 설명해 준 방식대로 실행해 보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요도를 통해 정액이 분출되며 나는 쓰러질 뻔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다. 세면대에 의지하여 잠시 그렇게 있었다. 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