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우리 조상이 만든 글자이다.
한자란 표현이 맞는가?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의 글자라고 주장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달성해야 한다.
첫째는 역대 자기 민족이 이룩한 나라 때에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아니면 자기민족이 만든 글자여야 한다.
그러면 한자는 중공의 글자가 맞는지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중공의 역대 국가 중에서 만든 글자인가.”
중공의 모든 학자들은 한자의 시초는 창힐이가 황제 헌원의 지시를 받아 만들었다고 사기에 기록하고 있고, 또 설문해자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갑골문이 한자의 가장 옛날의 글자로 주장하고 있다.
그럼 먼저 황제 헌원 때 만들었다고 하면 황제 헌원은 누구인가. 황제 헌원을 중공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으로 시조라고 한다. 그러나 황제 헌원은 나라를 세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헌원을 비롯한 그 이전의 역사를 삼황오제의 시절이라며, 국가 명을 내세우지 못하고, 단지 헌원이란 인물이 있어 중공의 서북부 지역을 통제하였고, 우리 조상 중 배달국의 14세 치우천왕과 탁록에서 전쟁을 하여 이겨 중공을 통치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중공의 역대 국가가 아닌 신화적 인물의 시대에 만들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중공의 역대 국가 중에 한자를 만든 국가는 없다는 결론이다.
다음은 중공의 민족이 만든 글자인가 하는 것이다.
중공은 창힐이는 “동이족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시조라는 황제 헌원이도 동이족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공의 자신들의 조상은 하족 또는 화족이라 하는데 화족과 하족은 동이족과 다른 민족이다.
다음은 그들이 갑골문이 한자의 최초글자라며 한자가 자기들의 글자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주장대로 갑골문을 “중공의 나라가 만들었고” “중공민족이 만들었는가?”를 살펴보자.
갑골문은 은나라 때 사용한 글자이므로 은나라가 중공의 역대 국가인가와 은나 라 국민이 중공 민족인가를 살펴보자
중공학자들은 중공이 주장하는 중공의 고대국가에 해당하는 하ㆍ은(상)ㆍ주는 동이민족의 변방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동이족의 국가는 어느 때인가, 하나라는 BC 2177년 ~ BC 1766년간 있던 나라이고, 은나라는 BC 1766 년 ~ BC 1122년에 있던 나라이며, 주나라는 BC 1122년 ~ BC 770년에 있던 나라이다. 이는 우리나라 고조선이 BC 2333년 ~ BC 425년에 있었던 나라이므로, 하ㆍ은ㆍ 주는 고조선의 변방국가인 것이다. 즉, 은나라는 고조선의 변방국가였으며, 고조선 의 제후국이고 민족은 동이민족 이다.
중공의 리바이펑(李白鳳) 학자는 그의 저서 「동이잡고」에서 “동이민족은 원래 황하유역에서 살았고, 문화가 매우 발달하였으며, 도자기와 문자를 처음으로 만들 었을 것이다. 은나라의 복사의 서법도 동이의 서법을 계승하였다.”라고 기고하였 다.
또 중공 난주대학교의 셔사오통교수는 그의 논문 “중공 사람의 DNA구 조 분석결과”에서 “한족이라는 독립적인 민족이 유전자(DNA)검사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한족은 과거 한 때 지역적인 구분에 따른 것일 뿐이고, 특정한 정의를 지닌 민족이라 볼 수 없다. 다만, 현재 중공의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하 카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술하여 중공이 자신들을 한족이라고 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공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족 또는 화족이라 하고 저희들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삼황인 복희와 신농씨는 동이족이며, 황제 헌원이도 동이족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족이란 사실상 주장에만 있는 실체는 없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자는 자신들이 최초의 중공 통일 국가라는 진나라는 불과 몇 년 지내지 않은 국가이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가진 통일 국가라는 한나라를 내세워 한족이라 하고 있지만 사실상 동이족들의 나라이고 특히 동이족인 우리 조상들이 세운 역사와 문화를 승계 받아 운영하면서 열등감에서 우리를 폄하할 목적으로 우리를 동이라며 깎아 낮추려고 하고 있다.
다음에는 그러면 한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가지고 살펴본다.
한자를 만들었다는 근거가 되는 서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와 중공의 『사기』이다. 이 둘의 주장을 요약하여 도표화 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한자 창제기원에 대한 비교표 >
우리나라 주장 | 중공 주장 |
창제시기 : 기원전 3897년 ~ 3804년 창제원인 : 거발한 환웅의 지시 창제자 : 신지혁덕 창제발상 : 사슴의 발자국으로 사슴 도망 간 방향을 인지 (녹도문=녹서) 자료근거 : 『환단고기』 「신시본기」 - 이맥 | 창제시기 : 기원전 2698 ~ 2593년 창제원인 : 황제 헌원의 지시 추정 창제자 : 사관 창힐 창제발상 : 새와 짐승 발자국을 보고 자료 근거 : 『사기』 - 사마천 |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에서는 BC 3897년에서 BC 3804년간 제위한 배달국의 초대 황제인 거발한 황웅께서 당시 왕명의 출납을 맡은 신지 혁덕에게 글자를 창제하도록 임무를 부여하여, 신지 혁덕이 고심 끝에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별안간 도망가는 암사슴 한 마리를 찾아 수색하던 중 모래 밭에 찍힌 사슴의 발 자국을 보고 도망간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착상하여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라며 상형자를 만듬으로써 한자를 처음 창제하 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중공은 『사기』에 BC 2698년부터 BC 2593년까지 제위했다는 황제 헌원이 그의 사관 창힐에게 지시하여, 창힐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착상하여 상형자 6자를 만든 것이 한자를 창제한 최초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쉽게 분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공의 위나라 때 학자 갈홍이 쓴 포박자를 보면 “옛날에 황제 헌원이 동쪽의 청구에 도착하여 풍산을 지날 때 자부선생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자부선생이 황제헌원에게 삼황내문이란 책을 주 었으며, 이를 가지고 황제헌원이 여러 신명을 불러 칙명을 하였다.”이다.
이 내용은 운급칠첨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여기에 나오는 청구는 치우황웅 이 배달국의 수도를 현재의 북경지역으로 옮기면서 부른 국명이고, 자부선생은 당 시 학식이 높은 현인으로 치우와 헌원이와 창힐 그리고 대요를 가르친 학자로써 삼황내문이란 책을 썼는데, 삼황내문에는 심신수련으로 수신득도하고 당시의 고유 사상과 철학과 종교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는 황제헌원 이전에도 문자가 있었기에 삼황내 문이란 책이 나올 수 있었으며, 자부선생이란 걸출한 학자도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문자는 그 이전에 있었다는 증거가 중공이 저희들의 조상이라는 태호 복희씨 가 팔괘로 환역을 만들었으며 이때 사용한 글자체가 용서라는 글자체이다.
따라서 중공이 주장하는 한자를 황제헌원이 창힐을 시켜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 말이고 날조된 것이며, 환단고기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한자는 중공의 글자가 아니라 동이족의 글자이며, 우리민족이 만들어 중공에 물려준 글자이다.
따라서 한자는 앞으로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옳지 않으며 한자로 표기하여야 타 당하다고 본다.
한자가 우리조상 글이란 확인
중공인들의 인식
-. 대만인의 인식
먼저 대만의 석학 임어당 박사와 안효상 장관의 일화이다
우리나라가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효상 박사께서 수교 국인 대만 정부를 방문한 후 세계적인 석학이며 친구인 대만의 임어당 박사를 방 문하여 환담한 내용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문교정책 중 한글전용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학자인 유림들 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그래서 이 임무를 관장하던 안효상 박사께서 임어당 박사 에게 푸념식으로 “여보 임박사 당신들 조상은 어찌해서 저 어려운 한자를 만들어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임어당 박사가 안효상 박사에게 줄 차를 준비하다가 바로 자리에 앉으며 대답하는 말이 “아니 안박사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한자와 한문은 우리 조 상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들 조상들 동이족이 우리 대륙을 통치할 때 만들어 사용하다가 우리에게 물려주어 우리는 이를 보존하고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시오.”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안효상 박사는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바가 없어 임어당 박사의 반격 에 응담을 못하고 얼굴이 붉혀졌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문자학자 이경제도 그들의 논문에서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고 말하고 있다.
-. 중공인들의 인식
다음은 중공의 학자들의 인식을 살펴본다.
중공의 역사한자 중 쩌우쥔멍(추군맹), 왕우저(왕옥철), 장원(장문), 창힐문화연구 원장인 쑨펑(손붕) 등도 그들의 논문 및 저서에서도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동이족이 동북방으로 옮겨 간 뒤 자신들은 이를 발전시킨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일본인들의 인식
일본도 한자를 그들의 기본글자로 사용하고 있어 한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인 인식하고 좋은 예로 우리나라 이다미디어 출판사에서 윤철규씨가 번역한 일본의 학자 시라가와 시즈카가 쓴 “한자의 기원”이란 제목의 책에서도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자는 우리 조상이 만든 글자이다.
한자란 표현이 맞는가?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의 글자라고 주장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달성해야 한다.
첫째는 역대 자기 민족이 이룩한 나라 때에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아니면 자기민족이 만든 글자여야 한다.
그러면 한자는 중공의 글자가 맞는지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중공의 역대 국가 중에서 만든 글자인가.”
중공의 모든 학자들은 한자의 시초는 창힐이가 황제 헌원의 지시를 받아 만들었다고 사기에 기록하고 있고, 또 설문해자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갑골문이 한자의 가장 옛날의 글자로 주장하고 있다.
그럼 먼저 황제 헌원 때 만들었다고 하면 황제 헌원은 누구인가. 황제 헌원을 중공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으로 시조라고 한다. 그러나 황제 헌원은 나라를 세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헌원을 비롯한 그 이전의 역사를 삼황오제의 시절이라며, 국가 명을 내세우지 못하고, 단지 헌원이란 인물이 있어 중공의 서북부 지역을 통제하였고, 우리 조상 중 배달국의 14세 치우천왕과 탁록에서 전쟁을 하여 이겨 중공을 통치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중공의 역대 국가가 아닌 신화적 인물의 시대에 만들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중공의 역대 국가 중에 한자를 만든 국가는 없다는 결론이다.
다음은 중공의 민족이 만든 글자인가 하는 것이다.
중공은 창힐이는 “동이족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시조라는 황제 헌원이도 동이족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공의 자신들의 조상은 하족 또는 화족이라 하는데 화족과 하족은 동이족과 다른 민족이다.
다음은 그들이 갑골문이 한자의 최초글자라며 한자가 자기들의 글자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주장대로 갑골문을 “중공의 나라가 만들었고” “중공민족이 만들었는가?”를 살펴보자.
갑골문은 은나라 때 사용한 글자이므로 은나라가 중공의 역대 국가인가와 은나 라 국민이 중공 민족인가를 살펴보자
중공학자들은 중공이 주장하는 중공의 고대국가에 해당하는 하ㆍ은(상)ㆍ주는 동이민족의 변방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동이족의 국가는 어느 때인가, 하나라는 BC 2177년 ~ BC 1766년간 있던 나라이고, 은나라는 BC 1766 년 ~ BC 1122년에 있던 나라이며, 주나라는 BC 1122년 ~ BC 770년에 있던 나라이다. 이는 우리나라 고조선이 BC 2333년 ~ BC 425년에 있었던 나라이므로, 하ㆍ은ㆍ 주는 고조선의 변방국가인 것이다. 즉, 은나라는 고조선의 변방국가였으며, 고조선 의 제후국이고 민족은 동이민족 이다.
중공의 리바이펑(李白鳳) 학자는 그의 저서 「동이잡고」에서 “동이민족은 원래 황하유역에서 살았고, 문화가 매우 발달하였으며, 도자기와 문자를 처음으로 만들 었을 것이다. 은나라의 복사의 서법도 동이의 서법을 계승하였다.”라고 기고하였 다.
또 중공 난주대학교의 셔사오통교수는 그의 논문 “중공 사람의 DNA구 조 분석결과”에서 “한족이라는 독립적인 민족이 유전자(DNA)검사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한족은 과거 한 때 지역적인 구분에 따른 것일 뿐이고, 특정한 정의를 지닌 민족이라 볼 수 없다. 다만, 현재 중공의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하 카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술하여 중공이 자신들을 한족이라고 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공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족 또는 화족이라 하고 저희들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삼황인 복희와 신농씨는 동이족이며, 황제 헌원이도 동이족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족이란 사실상 주장에만 있는 실체는 없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자는 자신들이 최초의 중공 통일 국가라는 진나라는 불과 몇 년 지내지 않은 국가이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가진 통일 국가라는 한나라를 내세워 한족이라 하고 있지만 사실상 동이족들의 나라이고 특히 동이족인 우리 조상들이 세운 역사와 문화를 승계 받아 운영하면서 열등감에서 우리를 폄하할 목적으로 우리를 동이라며 깎아 낮추려고 하고 있다.
다음에는 그러면 한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가지고 살펴본다.
한자를 만들었다는 근거가 되는 서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와 중공의 『사기』이다. 이 둘의 주장을 요약하여 도표화 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한자 창제기원에 대한 비교표 >
우리나라 주장
중공 주장
창제시기 : 기원전 3897년 ~ 3804년
창제원인 : 거발한 환웅의 지시
창제자 : 신지혁덕
창제발상 : 사슴의 발자국으로 사슴 도망
간 방향을 인지 (녹도문=녹서)
자료근거 : 『환단고기』 「신시본기」 - 이맥
창제시기 : 기원전 2698 ~ 2593년
창제원인 : 황제 헌원의 지시 추정
창제자 : 사관 창힐
창제발상 : 새와 짐승 발자국을 보고
자료 근거 : 『사기』 - 사마천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에서는 BC 3897년에서 BC 3804년간 제위한 배달국의 초대 황제인 거발한 황웅께서 당시 왕명의 출납을 맡은 신지 혁덕에게 글자를 창제하도록 임무를 부여하여, 신지 혁덕이 고심 끝에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별안간 도망가는 암사슴 한 마리를 찾아 수색하던 중 모래 밭에 찍힌 사슴의 발 자국을 보고 도망간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착상하여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라며 상형자를 만듬으로써 한자를 처음 창제하 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중공은 『사기』에 BC 2698년부터 BC 2593년까지 제위했다는 황제 헌원이 그의 사관 창힐에게 지시하여, 창힐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착상하여 상형자 6자를 만든 것이 한자를 창제한 최초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쉽게 분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공의 위나라 때 학자 갈홍이 쓴 포박자를 보면 “옛날에 황제 헌원이 동쪽의 청구에 도착하여 풍산을 지날 때 자부선생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자부선생이 황제헌원에게 삼황내문이란 책을 주 었으며, 이를 가지고 황제헌원이 여러 신명을 불러 칙명을 하였다.”이다.
이 내용은 운급칠첨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여기에 나오는 청구는 치우황웅 이 배달국의 수도를 현재의 북경지역으로 옮기면서 부른 국명이고, 자부선생은 당 시 학식이 높은 현인으로 치우와 헌원이와 창힐 그리고 대요를 가르친 학자로써 삼황내문이란 책을 썼는데, 삼황내문에는 심신수련으로 수신득도하고 당시의 고유 사상과 철학과 종교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는 황제헌원 이전에도 문자가 있었기에 삼황내 문이란 책이 나올 수 있었으며, 자부선생이란 걸출한 학자도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문자는 그 이전에 있었다는 증거가 중공이 저희들의 조상이라는 태호 복희씨 가 팔괘로 환역을 만들었으며 이때 사용한 글자체가 용서라는 글자체이다.
따라서 중공이 주장하는 한자를 황제헌원이 창힐을 시켜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 말이고 날조된 것이며, 환단고기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한자는 중공의 글자가 아니라 동이족의 글자이며, 우리민족이 만들어 중공에 물려준 글자이다.
따라서 한자는 앞으로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옳지 않으며 한자로 표기하여야 타 당하다고 본다.
한자가 우리조상 글이란 확인
중공인들의 인식
-. 대만인의 인식
먼저 대만의 석학 임어당 박사와 안효상 장관의 일화이다
우리나라가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효상 박사께서 수교 국인 대만 정부를 방문한 후 세계적인 석학이며 친구인 대만의 임어당 박사를 방 문하여 환담한 내용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문교정책 중 한글전용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학자인 유림들 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그래서 이 임무를 관장하던 안효상 박사께서 임어당 박사 에게 푸념식으로 “여보 임박사 당신들 조상은 어찌해서 저 어려운 한자를 만들어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임어당 박사가 안효상 박사에게 줄 차를 준비하다가 바로 자리에 앉으며 대답하는 말이 “아니 안박사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한자와 한문은 우리 조 상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들 조상들 동이족이 우리 대륙을 통치할 때 만들어 사용하다가 우리에게 물려주어 우리는 이를 보존하고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시오.”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안효상 박사는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바가 없어 임어당 박사의 반격 에 응담을 못하고 얼굴이 붉혀졌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문자학자 이경제도 그들의 논문에서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고 말하고 있다.
-. 중공인들의 인식
다음은 중공의 학자들의 인식을 살펴본다.
중공의 역사한자 중 쩌우쥔멍(추군맹), 왕우저(왕옥철), 장원(장문), 창힐문화연구 원장인 쑨펑(손붕) 등도 그들의 논문 및 저서에서도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동이족이 동북방으로 옮겨 간 뒤 자신들은 이를 발전시킨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일본인들의 인식
일본도 한자를 그들의 기본글자로 사용하고 있어 한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인 인식하고 좋은 예로 우리나라 이다미디어 출판사에서 윤철규씨가 번역한 일본의 학자 시라가와 시즈카가 쓴 “한자의 기원”이란 제목의 책에서도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