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갑갑한 일이 생겼을 때 내게 전화를 걸어 와 30분 정도씩 속내를 털어놓곤 하는 이가 있었다.
그 지인은 14년 전쯤부터 알고 지내던 이로, 올해 초 야학에서 우연히 얼굴이 마주쳤다.
다른 날보다 일찍 야학에 갔고, 작고 갑갑한 교실이 아닌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어 고개를 들었다. 지인이다. 야학 문을 들어서려던 지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눈빛과 함께 혼잣말로 '엉뚱한 말'을 하면서 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 버렸다.
삼십 분 내지 한 시간쯤 후에 지인이 다시 왔고, 나를 황급히 어느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여기 왜 왔어요?' 한다. 나와 자신을 남이 볼세라 감추듯 들어간 교실이 하필 내가 한글을 가르치는 무지개반이다. 지인의 언행으로 보아 이곳 학생이 분명하여 내가 이곳 교사라고 말을 하기가무척 미안해진다. 지인은 내게 여러 차례 물으며 뭘 배우느냐고 한다. 내가 상아탑반 학생이었을 때 같은 학생으로 만났으면 서로 편했을텐데 싶지만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어 대답을 했다.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지인의 표정이 아까와 또 다른 표정이 되며 자신은 기초 영어와 한문을 배운다고...
며칠 뒤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학 가까이에 있고, 늦게까지 하는 가게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가르쳐 줄 줄 아는 것과의 차이로 힘이 드는 날이었다. 매우 지치고, 공허하기까지 했기에 지인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학업에 대한 안부를 나눴다. 난 야학의 도움으로 고교를 마쳤고, 대학에 갔고, 야학의 은혜를 갚으러 학습 봉사를 하러 다니노라고. 지인도 자신의 학습 안부를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기초가 달려 야학에서 공부 중이라고 한다. 지인은 '기초'를 매우 강조했다.
고교를 졸업하고도 '기초'부터 공부할 수 있는 지인의 자세가 멋있어 보였다. 내가 16세 때 좌절됐던 고교를 지인은 무사히 마쳤다는 말에 부러움이 생겨 ‘지인을 부럽다’고 했다.
통화가 길어져 지하철역을 지나쳐 거의 지인의 가게 가까이 다달았다. 차 한잔 달라고, 가게로 가겠다고 했다. 사정하다시피 하는 내게 지인은 퇴근할 거라며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한다. 퇴근을 방해하긴 하지만 자신이 힘들어할 때 무조건 자신의 편이 되어 여러번 상담역이 돼 준 나를 강하게 거부하는 느낌에, 요구할 줄은 알되 요구해 오는 것에 대해 베풀려고 하지 않는구나 싶어 서운했다. 한편으론 퇴근하려는 사람에게 괜한 부담을 줬다 싶기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힘든 건 내 문제인데 싶으면서.
다른 날이다.
저녁 7시 임박하여 수업을 하려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지인이 야학에서 나와 걷고 있는 모습이 전방 5미터 앞에 보인다. 반갑다. 지인이 옆 사람과 얘기를 하며 걷던 중이라 나를 못 보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나의 반가움을 위해 알은체를 하여 둘의 대화를 방해해야 하나 어쩌나를 망설이는 차에 서로 스쳐 지나갔다.
그 뒤 지인을 야학에서 볼 수 없었다. 지인이 고교 졸업자이긴 해도 지난번에 당황하던 모습에 또 불편해 할까봐 가능한한 수업 전에 교무실에 있지 않으려 했다.
지난 초여름 어느 월요일 12시, 시민대학에서 심리 강의를 듣고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지인도 어느 강의실에서 나오는지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있다. 아하! 지인도 시민대학에서 연 어떤 강좌를 듣는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어머! ㅇㅇ님, 무슨 강의 들어요?'라고 물었다. 시민대학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쳤을 때 그 학습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겸 의례히 인사로 묻듯 지인에게도....
'뭐 듣기는...' 하며 지인은 도망치듯 사람들 속으로 가 묻혀버린다. 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에 다달으려던 걸음을 늦춰지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시민대학에 좋은 강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저런 반응이지 싶다.
초가을이다.
한글골든벨 행사가 있어 시민대학에 갔다. 교감선생님은 다른 행사에 참여해야 하니 내게 사진을 많이 찍으라며 당부한다.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어떤 아는 이가 행사 진행자로 왔고, 자신의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것도 해 줬다.
행사가 끝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무심코 오른쪽을 보니 '지인'이다. 'ㅇㅇ님.'이라며 자동으로 인사가 해 진다. 지인은 내 인사를 못 들은 척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반응으로 보아 아차! 싶으며 그간 의아했던 것이 풀리기 시작한다.
아하! 지인이 문해 골든벨 출전 학생이었구나, 시민대학 강의 듣는 것이 보통의 강의가 아닌 연세 높은 분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 과정(시민대학 7층에 있는 문해 과정)을 하고 있었구나가 정리된다.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찍는 나의 카메라 렌즈를 지인이 얼마나 많이 피하려고 애를 썼을까 싶은 마음이 들며, 지은 죄는 없지만 미안해 진다. 나도 정면만 바라봤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지인은 엘리베이터에 없다.
나눠 준 도시락을 먹으려 화단의 벤치로 가서 시민대학의 관계자와 얘길 하고 있었다.
지인이 문해 골든벨 행사에서 쓰고 남은 물과 자재들을 시민대학 관계자에게 주러 온다.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없고, 난감하다. 지인도 그런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자재들을 버리다시피 놓고 간다.
아~
시민대학 관계자에게 나의 난감함과 지인의 난감함을 하소연(?)했고, 집에 돌아와 시민대학 다른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후 설문지에 투고도 했다.)
초등학교 과정을 배우는 학습자가 다른 학습자와 마주치지 않게 수업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조금만 달리 해서 문해 학습자를 보호해 주면 좋겠다고.
안 된단다.
5분 내지 10분 정도만 조정하면 될 일을 안 된다니,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후~. 가슴으로 생각하면 될 일인 것을...
학습자가 견뎌야 한단다. 일반 학습자와 안 부딪치게 하면 그 부분은 굳이 견딜 필요가 없는데 어찌 그걸 학습자들에게 요구하는지. 1년만 공부하면 초등학교 졸업 자격을 주는 법도 만들었는데 그런 작은 배려를 안 하다니 싶다. 늦게 공부하느라 스스로 견뎌야 할 것도 너무나 많은데 그건 안 견디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다. 작은 배려를 해 주면 마음 편히 할 수 있을 일을. 대전시민대학(대전평생교육진흥원)은 늦깎이 학생들만을 위한 학습관이 아니기에 늦깎이 문해 학습자들이 느낄 감정의 상처가 더 클 수 있다.(지금 생각하니 문해 학습자들의 수업 시간을 달리하는 건 배려가 아니라 차별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무척 혼란스럽다.)
지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지은 죄 없이 ㅇㅇ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늦게 공부한 나나 ㅇㅇ님이나 같은 입장이다. 공부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학습관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지인이 짧은 답을 보내왔다.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못 배운 창피를 말한다. 아픔이지 창피가 아닌데.
시민대학이고 심리 수업 쉬는 시간이다. 물을 먹으러 가는데 교실로 돌아가는 지인이랑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당황된다. 문자도 주고 받았겠다 어차피 알게 된 거 차라리 서로 편해지자 싶어 지인에게 말을 걸었고, 지인의 손을 잡았다. 그런 채로 교실로 향하는 지인을 따라 함께 걸었다. 귀머거리가 된 듯, 벙어리가 된 듯, 내게 잡힌 손이 무감각하기라도 한 듯 지인은 표정 변화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나는 거기서 멈췄다.
그 후로도 두 번 더 지인과 복도에서 마주쳤고 나는 지인을 위해(?) 모른 체 해야 했다.
이젠 생각을 완전히 고쳤다. 나보다 훨씬 젊은 지인이 문해 학습자인 것이 창피해서가 아니라, 고교 졸업자라고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창피해서 나를 피하는 거라고.
(학벌에 대한 거짓말? 할 수 있다. 오죽하면 거짓으로 말했을까를, 그 거짓을 말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야학 문집에서 한글반 학생이었던 흔적으로 지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내가 받았던 충격이 사실 크다. 설마 싶기도 했고.
지인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도 많이 힘들었다. 지인이 공부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듯이 내가 지인의 학습에 누가 되나 싶어서. 나에 의해서 혹시나 지인이 학습을 멈출까봐 졸인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 많은 일로 내게 전화로 호소하던 지인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여러 대상으로부터 홀대를 받는 것을 여러 차례 하소연하던 지인이...
그런 홀대에 대해 당당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조언해 주었을 때 지인은 나의 조언을 모두 거부했다. 계속 그 홀대 속에 자신을 내버려두겠다는 듯이 보였다. 도움을 요청해 놓고 왜 거부할까 싶어 의아했었다.
이제 보니, 어쩌면 자신이 배움에 대한 약한 마음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인이 가졌던 주눅들고, 상처 입었던 마음들이 '학습이라는 장비 장착'으로 해소되어 가길 바란다. 머잖은 시기에 대학생이 되어 '짠!' 하고 나타나기를, 그리고 마음도 쑥 자라 있기를, 늦깎이 학생을 가르치는 학습 봉사자가 되어 더욱 자신을 통찰해 가는 사람이 되기를, 또 자신이 아파 그러했지만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나를 아프게 한 여러 순간들을 풀어 주러 내게 오기를....
자신에게 갑갑한 일이 생겼을 때 내게 전화를 걸어 와 30분 정도씩 속내를 털어놓곤 하는 이가 있었다.
그 지인은 14년 전쯤부터 알고 지내던 이로, 올해 초 야학에서 우연히 얼굴이 마주쳤다.
다른 날보다 일찍 야학에 갔고, 작고 갑갑한 교실이 아닌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어 고개를 들었다. 지인이다. 야학 문을 들어서려던 지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눈빛과 함께 혼잣말로 '엉뚱한 말'을 하면서 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 버렸다.
삼십 분 내지 한 시간쯤 후에 지인이 다시 왔고, 나를 황급히 어느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여기 왜 왔어요?' 한다. 나와 자신을 남이 볼세라 감추듯 들어간 교실이 하필 내가 한글을 가르치는 무지개반이다. 지인의 언행으로 보아 이곳 학생이 분명하여 내가 이곳 교사라고 말을 하기가무척 미안해진다. 지인은 내게 여러 차례 물으며 뭘 배우느냐고 한다. 내가 상아탑반 학생이었을 때 같은 학생으로 만났으면 서로 편했을텐데 싶지만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어 대답을 했다.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지인의 표정이 아까와 또 다른 표정이 되며 자신은 기초 영어와 한문을 배운다고...
며칠 뒤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학 가까이에 있고, 늦게까지 하는 가게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가르쳐 줄 줄 아는 것과의 차이로 힘이 드는 날이었다. 매우 지치고, 공허하기까지 했기에 지인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학업에 대한 안부를 나눴다. 난 야학의 도움으로 고교를 마쳤고, 대학에 갔고, 야학의 은혜를 갚으러 학습 봉사를 하러 다니노라고. 지인도 자신의 학습 안부를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기초가 달려 야학에서 공부 중이라고 한다. 지인은 '기초'를 매우 강조했다.
고교를 졸업하고도 '기초'부터 공부할 수 있는 지인의 자세가 멋있어 보였다. 내가 16세 때 좌절됐던 고교를 지인은 무사히 마쳤다는 말에 부러움이 생겨 ‘지인을 부럽다’고 했다.
통화가 길어져 지하철역을 지나쳐 거의 지인의 가게 가까이 다달았다. 차 한잔 달라고, 가게로 가겠다고 했다. 사정하다시피 하는 내게 지인은 퇴근할 거라며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한다. 퇴근을 방해하긴 하지만 자신이 힘들어할 때 무조건 자신의 편이 되어 여러번 상담역이 돼 준 나를 강하게 거부하는 느낌에, 요구할 줄은 알되 요구해 오는 것에 대해 베풀려고 하지 않는구나 싶어 서운했다. 한편으론 퇴근하려는 사람에게 괜한 부담을 줬다 싶기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힘든 건 내 문제인데 싶으면서.
다른 날이다.
저녁 7시 임박하여 수업을 하려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지인이 야학에서 나와 걷고 있는 모습이 전방 5미터 앞에 보인다. 반갑다. 지인이 옆 사람과 얘기를 하며 걷던 중이라 나를 못 보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나의 반가움을 위해 알은체를 하여 둘의 대화를 방해해야 하나 어쩌나를 망설이는 차에 서로 스쳐 지나갔다.
그 뒤 지인을 야학에서 볼 수 없었다. 지인이 고교 졸업자이긴 해도 지난번에 당황하던 모습에 또 불편해 할까봐 가능한한 수업 전에 교무실에 있지 않으려 했다.
지난 초여름 어느 월요일 12시, 시민대학에서 심리 강의를 듣고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지인도 어느 강의실에서 나오는지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있다. 아하! 지인도 시민대학에서 연 어떤 강좌를 듣는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어머! ㅇㅇ님, 무슨 강의 들어요?'라고 물었다. 시민대학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쳤을 때 그 학습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겸 의례히 인사로 묻듯 지인에게도....
'뭐 듣기는...' 하며 지인은 도망치듯 사람들 속으로 가 묻혀버린다. 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에 다달으려던 걸음을 늦춰지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시민대학에 좋은 강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저런 반응이지 싶다.
초가을이다.
한글골든벨 행사가 있어 시민대학에 갔다. 교감선생님은 다른 행사에 참여해야 하니 내게 사진을 많이 찍으라며 당부한다.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어떤 아는 이가 행사 진행자로 왔고, 자신의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것도 해 줬다.
행사가 끝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무심코 오른쪽을 보니 '지인'이다. 'ㅇㅇ님.'이라며 자동으로 인사가 해 진다. 지인은 내 인사를 못 들은 척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반응으로 보아 아차! 싶으며 그간 의아했던 것이 풀리기 시작한다.
아하! 지인이 문해 골든벨 출전 학생이었구나, 시민대학 강의 듣는 것이 보통의 강의가 아닌 연세 높은 분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 과정(시민대학 7층에 있는 문해 과정)을 하고 있었구나가 정리된다.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찍는 나의 카메라 렌즈를 지인이 얼마나 많이 피하려고 애를 썼을까 싶은 마음이 들며, 지은 죄는 없지만 미안해 진다. 나도 정면만 바라봤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지인은 엘리베이터에 없다.
나눠 준 도시락을 먹으려 화단의 벤치로 가서 시민대학의 관계자와 얘길 하고 있었다.
지인이 문해 골든벨 행사에서 쓰고 남은 물과 자재들을 시민대학 관계자에게 주러 온다.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없고, 난감하다. 지인도 그런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자재들을 버리다시피 놓고 간다.
아~
시민대학 관계자에게 나의 난감함과 지인의 난감함을 하소연(?)했고, 집에 돌아와 시민대학 다른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후 설문지에 투고도 했다.)
초등학교 과정을 배우는 학습자가 다른 학습자와 마주치지 않게 수업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조금만 달리 해서 문해 학습자를 보호해 주면 좋겠다고.
안 된단다.
5분 내지 10분 정도만 조정하면 될 일을 안 된다니,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후~. 가슴으로 생각하면 될 일인 것을...
학습자가 견뎌야 한단다. 일반 학습자와 안 부딪치게 하면 그 부분은 굳이 견딜 필요가 없는데 어찌 그걸 학습자들에게 요구하는지. 1년만 공부하면 초등학교 졸업 자격을 주는 법도 만들었는데 그런 작은 배려를 안 하다니 싶다. 늦게 공부하느라 스스로 견뎌야 할 것도 너무나 많은데 그건 안 견디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다. 작은 배려를 해 주면 마음 편히 할 수 있을 일을. 대전시민대학(대전평생교육진흥원)은 늦깎이 학생들만을 위한 학습관이 아니기에 늦깎이 문해 학습자들이 느낄 감정의 상처가 더 클 수 있다.(지금 생각하니 문해 학습자들의 수업 시간을 달리하는 건 배려가 아니라 차별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무척 혼란스럽다.)
지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지은 죄 없이 ㅇㅇ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늦게 공부한 나나 ㅇㅇ님이나 같은 입장이다. 공부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학습관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지인이 짧은 답을 보내왔다.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못 배운 창피를 말한다. 아픔이지 창피가 아닌데.
시민대학이고 심리 수업 쉬는 시간이다. 물을 먹으러 가는데 교실로 돌아가는 지인이랑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당황된다. 문자도 주고 받았겠다 어차피 알게 된 거 차라리 서로 편해지자 싶어 지인에게 말을 걸었고, 지인의 손을 잡았다. 그런 채로 교실로 향하는 지인을 따라 함께 걸었다. 귀머거리가 된 듯, 벙어리가 된 듯, 내게 잡힌 손이 무감각하기라도 한 듯 지인은 표정 변화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나는 거기서 멈췄다.
그 후로도 두 번 더 지인과 복도에서 마주쳤고 나는 지인을 위해(?) 모른 체 해야 했다.
이젠 생각을 완전히 고쳤다. 나보다 훨씬 젊은 지인이 문해 학습자인 것이 창피해서가 아니라, 고교 졸업자라고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창피해서 나를 피하는 거라고.
(학벌에 대한 거짓말? 할 수 있다. 오죽하면 거짓으로 말했을까를, 그 거짓을 말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야학 문집에서 한글반 학생이었던 흔적으로 지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내가 받았던 충격이 사실 크다. 설마 싶기도 했고.
지인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도 많이 힘들었다. 지인이 공부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듯이 내가 지인의 학습에 누가 되나 싶어서. 나에 의해서 혹시나 지인이 학습을 멈출까봐 졸인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 많은 일로 내게 전화로 호소하던 지인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여러 대상으로부터 홀대를 받는 것을 여러 차례 하소연하던 지인이...
그런 홀대에 대해 당당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조언해 주었을 때 지인은 나의 조언을 모두 거부했다. 계속 그 홀대 속에 자신을 내버려두겠다는 듯이 보였다. 도움을 요청해 놓고 왜 거부할까 싶어 의아했었다.
이제 보니, 어쩌면 자신이 배움에 대한 약한 마음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인이 가졌던 주눅들고, 상처 입었던 마음들이 '학습이라는 장비 장착'으로 해소되어 가길 바란다. 머잖은 시기에 대학생이 되어 '짠!' 하고 나타나기를, 그리고 마음도 쑥 자라 있기를, 늦깎이 학생을 가르치는 학습 봉사자가 되어 더욱 자신을 통찰해 가는 사람이 되기를, 또 자신이 아파 그러했지만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나를 아프게 한 여러 순간들을 풀어 주러 내게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