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나눔 공간


아이고 무서버래이

한마음야학 관리자
2017-10-20
조회수 92

내 나이 열 살, 어머니를 따라 난생처음으로 부산에 갔다. 친척집 앞에서 만난 계단 또한 난생처음이었고, 나는 그 계단으로 하여 벌벌 떨어야 했다. 2층 계단으로 하여 말이다.

인생 십 년을 사는 동안 만났던 두려움이 왜 없으랴. 뱀과 쥐를 만났었고, 거머리, 풀쐐기, 송충이를 만났었다. 이럴 땐 '엄마야.' 기함을 하며 얼른 피하기에 두려움도 순식간에 끝났었다. 감을 따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가 무서워서 쩔쩔맨 적이 있었고, 무서운 개한테 쫓기며 공포를 맛봤었다. 또한 산에 깔비(솔잎)를 긁으로 갔다가 산주인한테 들켜 두려움에 떨었었다.
그런데 십 년 차 삶에 맞닥들인 계단은 무서운 개 열 마리가 한꺼번에 덤비는 느낌이었다.

2층 계단을 중간 남짓 오르고 나니 너무나 무서워 더 오를 수가 없다. 내려가고 싶어 뒤돌아보니 경사가 주는 느낌은 더욱 아찔하다. 설령 계단 내려가기에 성공한다고 해도 낯선 부산 골목에 혼자 있을 수 없다. 두려워서 계단에 머물 수도 없다.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계단에 내 몸이 얼어붙은 듯하면서도 미끄러져 내려갈 듯하다. 허벅지가 움찔거리고, 심장이 벌떡이며, 숨이 거칠어져 예민해진다.
어머니가 손을 잡아주시니 팔만 따라갈 뿐인데도 내 몸 높이가 높아지려 한다. '엄마, 손 놔라, 더 무섭다.' 다급하게 소리치며 어머니의 손을 놨다. 어머니가 나를 위로하느라 두 손을 내 엉덩이 옆에 대신다. 그것도 공포를 가중시켜 못 견디겠다. 내게서 손을 뗀 어머니가 뒤에서 응원을 하시는 동안 두 손으로 계단을 짚으며 네 발로 기어 계단을 올랐다. '개얀타. 엄마가 밑에 서 있을게. 살살 올라가 바라.' 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먹고 말이다.

계단 오르기에 성공하여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친척집 식모 아지매가 차려 준, 생선이 많이 차려진 맛깔난 '부산 음식'으로 하여 계단에게서 받은 공포를 위안받았다.
가위로 오린 듯 그 다음부터의 기억은 없다. 계단 오르기보다 더 무서웠을 계단 내려오기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건 어쩌면 '도저히 기억해서는 안 될 공포'이었기에 내 기억에서 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2층 집 하나 없는 농촌에서 아동깃적을 보낸 내가 처음 만난 계단과의 짜릿한 기억이다. 고소공포를 내게 주던 계단의 두려움이 다행히도 그 이후에 사라져 청소년 시기부터는 부산 광복동에 있는 *194개의 돌계단도 자유로이 오르내리게 됐다. 등 뒤에서 해 주시던 엄마의 응원 없이도 말이다.

초가집과 기와집만 있던 내 고향 마을에 하나도 없던 계단 있는 집, 이젠 그곳에도 천지빼까리겠지!

*194 계단: 용두산공원에 오르는 계단의 수로, 옛 가요 '용두산 엘레지'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