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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한마음야학 관리자
2018-04-30
조회수 133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한 떼의 아이들이 골목에 모여 가위바위보를 외친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작은 손을 서로에게 내밀어 보인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소는 항상 마을 입구 삼거리에 놓인 전봇대 앞이다.

수차례 손을 내밀었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술래가 정해진다.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술래다. 소년은 전봇대를 마주보고 선다. 자신의 양 손등을 두 눈에 댄 후, 손바닥을 전봇대에 부착하여 전봇대와 하나가 된다. 순진하게 눈을 진짜로 감으면 안 된다. 실눈을 떠서 최대한 안구를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손등 사이로 아이들이 향하는 곳을 확인해 두어야 한다. 소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 외친 후 아이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시작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찾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열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터 오십까지 세는 것을 대신하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십 이상이 넘어가면 두 글자가 하나의 숫자를 가리킨다. ‘11’십일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보다 한 글자를 더 말해야 한다. 이십 이상이 넘어가면 세 글자가 하나의 숫자를 가리킨다. ‘21’이십일이다. ‘보다 두 글자를 더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 반복함으로써 오십까지 세었다고 합의를 본 것은 놀이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한 꼬마들의 창의적 발상이다. 또한 오십까지 숫자를 세는데 서툰 친구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갈래는 세 갈래. 오른쪽 윗길로 몇 놈이 달아나는 것을 샛눈으로 보았다. 오른쪽 윗길로 향한다. 그 길에는 숨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오른쪽 윗길 첫째 집 대문을 들어서면 장독대가 있다. 숨기 좋은 장소이다. 그리고 세 째 집과 네 째 집 사이 작은 골목에는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이 있다. 그 곳 역시 숨기 좋은 곳이다. 다섯 째 집은 우연이네 집이다. 우연이는 가끔 자기 방으로 숨어들 곤 하니 역시 탐색해야 할 주요 장소다. 첫 째 집 대문을 들어선다. 순간 만세소리가 연달아 세 차례 들린다. 왼쪽 윗길과 아랫길에 숨어있던 친구들이 전봇대를 손으로 치며 외치는 소리다. 놈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소년의 뒤를 쫒는다. 외쳐댄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술래인 소년의 위치를 알려 숨어있는 동료들을 도우려는 의로운 행동이다.

첫째 집 장독대 뒤에서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 첫째 집 대문을 나서서 두 번 째 쓰레기통으로 서너 발자국 발길을 급히 옮긴다. 이런! 쏜살같이 첫째 집 대문을 빠져나와 전봇대로 향하는 녀석. ‘석민이다. 도대체 어디에 숨었었을까? 장독대 뒤에는 분명 없었다. 녀석도 전봇대를 짚으면서 만세를 부르고 희희낙락 내 뒤를 따른다. 외친다. ‘꼭꼭 숨어라. 술래가 우연이네 집으로 간다.’ ‘꼭꼭 숨어라. 술래가 우연이네 집으로 간다.’ 괜찮다! 한 놈만 잡으면 된다. 한 놈만 잡아도 술래는 바뀐다.

역시, 쓰레기통 뒤는 항상 누군가가 숨는 장소다. 머리가 빼꼼히 나왔다 들어간다. ‘쓰레기통 뒤, 나와.’ 소년이 외치자 아이들 둘이 달려 나오기 시작한다. 소년도 아이들을 확인하고 전봇대로 힘껏 내달린다. 아이들을 찾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봇대를 먼저 짚으면서 ‘OO 술래’, ‘OO 술래를 상대방이 외치려는 만세보다 먼저 외쳐야 한다. 녀석들보다 늦게 도착하면 꽝이다.

! 두 녀석이나 찾았다. 필요에 따라서는 숨어있는 나머지 친구들을 찾아 소년의 능력을 뽐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소년이 선창하고 나머지 아이들이 따라한다. ‘못찾겠다 꾀꼬리’, ‘못찾겠다 꾀꼬리’. 골목 사이사이에서 아이들이 나와 전봇대로 모여든다. 소년 주위로 모여든다. 다시 새로운 놀이가 시작된다.

 

이제 도심 그 어느 곳에도 술래잡기하는 아이들을 볼 수는 없다. ‘술래잡기할 수 있는 전봇대가 없고, 골목이 없다. 숨을 수 있는 장독대가 없고, 쓰레기통이 없고, 열린 대문도 없다.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다. 대학도 나왔다. 군대도 다녀왔다. 사랑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통성명을 하고 차를 마셨다. 술도 마셨다.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순간이 영원할 듯, 서로의 믿음이 영원할 듯.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 오른 손엔 서류 가방을 왼손에는 담배 한 개비를. 술래잡기하던 친구들은 모두들 어디에 숨었을까! ‘못찾겠다 꾀꼬리.’ 이 한마디만으로 모두가 모여들었다. 외로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변 전봇대는 피곤한 듯 누런 불빛을 내뿜고 있다. 담뱃불을 튕기고 담배꽁초를 하수구로 내 던진다. 자유로워진 왼손을 들어 전봇대를 짚는다. ‘못찾겠다 꾀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