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엌]
***
“상주분! 오셔서 취토하십시요.”
초취한 몰골의 중년 신사에게 흙이 담긴 삽이 손에 쥐어진다.
“조금씩 나누어서 관 위 네 귀퉁이에 골고루 뿌리시면 됩니다.”
관 위로 한 줌의 흙이 흩뿌려진다.
“다음, 사모님 허토하...”
하얀 상복에 두터운 페딩코트를 입은 중년의 여성은 양 겨드랑이를 좌우 사람에게 의지한 채 딸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고개를 휘젓는다. 이미 그녀의 다리는 왜소한 자신의 체구를 지탱할 기력조차 없는 상태다.
“사모님은 힘드실 것 같으니, 그럼 가족이나 친지 분, 앞으로 나오십시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럼 친구 분 계십니까?”
“네....”
젊은 여성 두 명이 앞으로 나온다.
“허토하십시오.”
“미연아! 잘 가. 그곳에선 잘 살고....” 여인들은 흙을 흩뿌리며 흐느낀다.
“그럼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잠깐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초로의 사내 둘은 빠른 손길로 봉분을 만들어 나간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아버님!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아버님, 아버님! 어떻해요!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니까요!”
“....”
“어허. 안 되겠구먼. 어서 119 불러요. 장사 치르다 큰일 나겠구먼.” 봉분을 만들던 사내 중 한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여성에게 소리친다. 사내의 외침에 상황을 파악한 듯 여성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
겨울철 서산에 걸린 해는 뉘엿뉘엿 창백한 빛줄기를 뿜고 있다. 듬성듬성 떼를 입은 봉분 앞에 중년의 신사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상주님! 다 되었습니다. 내려가시지요.”
“....”
“슬프시겠지만 몸 상하십니다. 사모님에게도 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럼 저희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가세!”
초로의 사내들은 주섬주섬 연장을 챙겨 자리를 뜬다. 중년의 신사는 미동은커녕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봉분만을 바라보고 있다.
***
가운조차 걸치지 않은 사내가 수술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교수님! 산모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태아가 골반에 걸려 나오지 않는데, 출혈이 심합니다. 심박동도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산모는?”
“신콥(실신) 상탭니다.”
사내의 주먹이 사정없이 전공의의 얼굴을 가격하고 전공의는 수술실 바닥에 쓰러진다.
“야! 개새끼야. 이상태가 되도록 보고를 안 하면 어떻하겠다는 거야. 피케(실습학생)이들 다 내보내! 마취과 콜하고 지금 당장 내려오라고 해. 유교수와 정교수도 오시라고 콜 하고. 블러드(혈액팩) 있는 데로 확보해 오고. 당장 시섹(제왕절개) 준비 해.”
사내의 지시가 떨어지고 의료진들은 쏜살같이 그러나 우왕좌왕 움직인다.
“시팔. 어쩐다.”
산모에게 호흡마취기가 연결된 산소마스크가 씌어지고, 사내의 오른손에는 메스(수술용 칼)가 들려있다.
“들어갑니다.”
“교수님! 태아는!”
“우선 최선을 다 해 봅시다. 그리고 우선 순위는 산모를 살리는 방향으로 갑시다.”
“예.”
환자의 피부가 세로절개 되고 노란 지방층이 젖혀진다. 복부근육을 벌려가며 복막에 메스 끝이 닿는 순간 혈액이 분수처럼 내뿜는다. 무영등이 붉게 물든다.
“교수님! 혈압이 너무 낮습니다. 호흡도 약합니다. 서브클레비안(쇄골하동맥) 잡을까요?”
“예! 유교수님. 서브클레비안 잡아주시고 수혈 좀 빨리 부탁드려요. 장교수님! 썩션 좀 도와주시고요. 제길. 도대체 어떤 아테리(동맥) 럽쳐(파열)야!”
“교수님! 분출되는 것으로 보아 레프트 바자이날(왼질동맥) 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케이! 확인해 봅시다. 썩션!”
***
“여보! 왜 이리 오래 걸릴까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걱정하지 말아요. 김교수야 우리나라 산과 최고의 권위자 아니오. 원래 첫 아이 출산은 오래 걸리는 법이야. 잠시 연구실 좀 다녀올게. 연구비 마감하는 게 있어서 메일 좀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당신은 일중독이에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출산하는데 지금 일 생각이 나세요.”
“중요한 일이야. 김교수하고 같이 하는 프로젝트데 이것만 잘 되며, 김교수는 병원장, 나는 학장, 따 놓은 당상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출산하는데. 사위라도 있으면...”
“재수 없게 또 그 소리다. 그 자식이 어디 사람이야. 짐승새끼도 그 놈보다 낫겠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다녀 올테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구려.”
“미연이 아버지! 저도 무섭단 말이에요.”
중년의 신사는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떠나버리고 여성은 뿌루퉁해져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혼을 시키지 말걸. 아니야! 그런 놈하고 어떻게 살아. 사지는 멀쩡해가지고 의사라는 놈이 지 와이프를 개 패듯 패니. 휴~. 내 팔자야. 목석같은 저 인간하고 외롭게 생활해 온 게 십수년인데 우리 미연이 결혼하고 손주 보며 아웅다웅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나 했더니. 박복해. 박복해’
수술실 앞 복도의 적막을 깨는 다급한 구두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두 명의 사내가 다급히 그녀 앞을 스쳐간다.
‘아! 유교수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확실치는 않지만 김교수와 함께 일하는 젊은 교수인 것 같다. 한 두 차례 식사자리를 남편과 함께 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의자에서 일어섰지만 두 사람은 그녀 앞을 빠르게 지나쳐 수술실 안으로 사라진다.
‘아닌가? 맞는데.’
***
“사모님!”
“아! 김교수님! 수고하셨어요. 아기와 산모 다 건강하지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그게... 저.... 혹시 조교수는 어디 있나요.”
“글쎄 교수님과 함께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연구실로 가버렸지 뭐에요. 무심한 사람인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무심도 이런 무심이 있나 싶어요.”
“아... 예...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출산이 좀 늦어지나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요?”
“아! 예! 조교수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김교수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연구실이라.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한다, 아니면 전화로... 내가 자리를 지켰어야 하는데... 이런 일이 하필이면 조교수 딸에게...’
***
중년의 여성은 흐트러진 머릿결에 멍한 눈길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중년의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다.
“혹시 고 조미연씨 상주분 되십니까? 아! 저는 OO법률 대표이사 김진태입니다. 고 조미연씨 아버님 조순종씨, 어머님 박나겸씨 맞으시죠.”
“예!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좀 알아봐 주셨나요!”
여인은 영정사진에서 고개를 돌려 방문한 사내를 향해 고쳐 앉는다. 남성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네! 의뢰해 주신 사안에 대해 저희 법률팀에서 조사하였습니다. 당일 주치의인 김박사는 분만이 길어지자 업무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고 비상사태에 대한 전공의의 대처 미숙이 따님과 손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의료과실의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의료과실은 증명하기가 까다롭습니다.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 책임을 묻는데 있어 힘드시겠지만 부검을 통해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부검에 의한 사인이 과다 출혈로 밝혀지면, 현장을 책임져야할 김박사가 부재하였으므로 병원과 김박사를 상대로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여보! 어떻할까요?”
“....”
“가타 부타 뭐라 말 좀 해 보세요.”
“....”
“우리 미연이 죽은 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딸내미 하나 바라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우리 미연이 이렇게 보내는 것이 너무 억울하잖아요.”
“....”
“당신, 학교에서 짤릴까봐 그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에요. 그렇게 당신 일이 중요해요. 당신 명성이 우리 딸보다 중요해요.”
“....”
“아! 내가 이런 사람하고 살았어. 어떻게 자기 딸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미쳤지, 미쳤어! 자기 밖에 모르는 미친 사람같으니!”
여전히 중년의 사내는 미동조차 없다. 마치 돌부처가 된 듯 숨결 조자 드러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사모님! 내일 모래가 발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시려면 내일까지 부검 실시 여부를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나머지 절차는 저희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결정하시는데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리고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
“소리 좀 줄여봐!”
[어~엌]
***
“상주분! 오셔서 취토하십시요.”
초취한 몰골의 중년 신사에게 흙이 담긴 삽이 손에 쥐어진다.
“조금씩 나누어서 관 위 네 귀퉁이에 골고루 뿌리시면 됩니다.”
관 위로 한 줌의 흙이 흩뿌려진다.
“다음, 사모님 허토하...”
하얀 상복에 두터운 페딩코트를 입은 중년의 여성은 양 겨드랑이를 좌우 사람에게 의지한 채 딸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고개를 휘젓는다. 이미 그녀의 다리는 왜소한 자신의 체구를 지탱할 기력조차 없는 상태다.
“사모님은 힘드실 것 같으니, 그럼 가족이나 친지 분, 앞으로 나오십시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럼 친구 분 계십니까?”
“네....”
젊은 여성 두 명이 앞으로 나온다.
“허토하십시오.”
“미연아! 잘 가. 그곳에선 잘 살고....” 여인들은 흙을 흩뿌리며 흐느낀다.
“그럼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잠깐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초로의 사내 둘은 빠른 손길로 봉분을 만들어 나간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아버님!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아버님, 아버님! 어떻해요!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니까요!”
“....”
“어허. 안 되겠구먼. 어서 119 불러요. 장사 치르다 큰일 나겠구먼.” 봉분을 만들던 사내 중 한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여성에게 소리친다. 사내의 외침에 상황을 파악한 듯 여성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
겨울철 서산에 걸린 해는 뉘엿뉘엿 창백한 빛줄기를 뿜고 있다. 듬성듬성 떼를 입은 봉분 앞에 중년의 신사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상주님! 다 되었습니다. 내려가시지요.”
“....”
“슬프시겠지만 몸 상하십니다. 사모님에게도 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럼 저희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가세!”
초로의 사내들은 주섬주섬 연장을 챙겨 자리를 뜬다. 중년의 신사는 미동은커녕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봉분만을 바라보고 있다.
***
가운조차 걸치지 않은 사내가 수술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교수님! 산모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태아가 골반에 걸려 나오지 않는데, 출혈이 심합니다. 심박동도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산모는?”
“신콥(실신) 상탭니다.”
사내의 주먹이 사정없이 전공의의 얼굴을 가격하고 전공의는 수술실 바닥에 쓰러진다.
“야! 개새끼야. 이상태가 되도록 보고를 안 하면 어떻하겠다는 거야. 피케(실습학생)이들 다 내보내! 마취과 콜하고 지금 당장 내려오라고 해. 유교수와 정교수도 오시라고 콜 하고. 블러드(혈액팩) 있는 데로 확보해 오고. 당장 시섹(제왕절개) 준비 해.”
사내의 지시가 떨어지고 의료진들은 쏜살같이 그러나 우왕좌왕 움직인다.
“시팔. 어쩐다.”
산모에게 호흡마취기가 연결된 산소마스크가 씌어지고, 사내의 오른손에는 메스(수술용 칼)가 들려있다.
“들어갑니다.”
“교수님! 태아는!”
“우선 최선을 다 해 봅시다. 그리고 우선 순위는 산모를 살리는 방향으로 갑시다.”
“예.”
환자의 피부가 세로절개 되고 노란 지방층이 젖혀진다. 복부근육을 벌려가며 복막에 메스 끝이 닿는 순간 혈액이 분수처럼 내뿜는다. 무영등이 붉게 물든다.
“교수님! 혈압이 너무 낮습니다. 호흡도 약합니다. 서브클레비안(쇄골하동맥) 잡을까요?”
“예! 유교수님. 서브클레비안 잡아주시고 수혈 좀 빨리 부탁드려요. 장교수님! 썩션 좀 도와주시고요. 제길. 도대체 어떤 아테리(동맥) 럽쳐(파열)야!”
“교수님! 분출되는 것으로 보아 레프트 바자이날(왼질동맥) 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케이! 확인해 봅시다. 썩션!”
***
“여보! 왜 이리 오래 걸릴까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걱정하지 말아요. 김교수야 우리나라 산과 최고의 권위자 아니오. 원래 첫 아이 출산은 오래 걸리는 법이야. 잠시 연구실 좀 다녀올게. 연구비 마감하는 게 있어서 메일 좀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당신은 일중독이에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출산하는데 지금 일 생각이 나세요.”
“중요한 일이야. 김교수하고 같이 하는 프로젝트데 이것만 잘 되며, 김교수는 병원장, 나는 학장, 따 놓은 당상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출산하는데. 사위라도 있으면...”
“재수 없게 또 그 소리다. 그 자식이 어디 사람이야. 짐승새끼도 그 놈보다 낫겠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다녀 올테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구려.”
“미연이 아버지! 저도 무섭단 말이에요.”
중년의 신사는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떠나버리고 여성은 뿌루퉁해져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혼을 시키지 말걸. 아니야! 그런 놈하고 어떻게 살아. 사지는 멀쩡해가지고 의사라는 놈이 지 와이프를 개 패듯 패니. 휴~. 내 팔자야. 목석같은 저 인간하고 외롭게 생활해 온 게 십수년인데 우리 미연이 결혼하고 손주 보며 아웅다웅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나 했더니. 박복해. 박복해’
수술실 앞 복도의 적막을 깨는 다급한 구두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두 명의 사내가 다급히 그녀 앞을 스쳐간다.
‘아! 유교수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확실치는 않지만 김교수와 함께 일하는 젊은 교수인 것 같다. 한 두 차례 식사자리를 남편과 함께 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의자에서 일어섰지만 두 사람은 그녀 앞을 빠르게 지나쳐 수술실 안으로 사라진다.
‘아닌가? 맞는데.’
***
“사모님!”
“아! 김교수님! 수고하셨어요. 아기와 산모 다 건강하지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그게... 저.... 혹시 조교수는 어디 있나요.”
“글쎄 교수님과 함께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연구실로 가버렸지 뭐에요. 무심한 사람인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무심도 이런 무심이 있나 싶어요.”
“아... 예...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출산이 좀 늦어지나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요?”
“아! 예! 조교수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김교수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연구실이라.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한다, 아니면 전화로... 내가 자리를 지켰어야 하는데... 이런 일이 하필이면 조교수 딸에게...’
***
중년의 여성은 흐트러진 머릿결에 멍한 눈길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중년의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다.
“혹시 고 조미연씨 상주분 되십니까? 아! 저는 OO법률 대표이사 김진태입니다. 고 조미연씨 아버님 조순종씨, 어머님 박나겸씨 맞으시죠.”
“예!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좀 알아봐 주셨나요!”
여인은 영정사진에서 고개를 돌려 방문한 사내를 향해 고쳐 앉는다. 남성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네! 의뢰해 주신 사안에 대해 저희 법률팀에서 조사하였습니다. 당일 주치의인 김박사는 분만이 길어지자 업무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고 비상사태에 대한 전공의의 대처 미숙이 따님과 손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의료과실의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의료과실은 증명하기가 까다롭습니다.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 책임을 묻는데 있어 힘드시겠지만 부검을 통해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부검에 의한 사인이 과다 출혈로 밝혀지면, 현장을 책임져야할 김박사가 부재하였으므로 병원과 김박사를 상대로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여보! 어떻할까요?”
“....”
“가타 부타 뭐라 말 좀 해 보세요.”
“....”
“우리 미연이 죽은 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딸내미 하나 바라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우리 미연이 이렇게 보내는 것이 너무 억울하잖아요.”
“....”
“당신, 학교에서 짤릴까봐 그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에요. 그렇게 당신 일이 중요해요. 당신 명성이 우리 딸보다 중요해요.”
“....”
“아! 내가 이런 사람하고 살았어. 어떻게 자기 딸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미쳤지, 미쳤어! 자기 밖에 모르는 미친 사람같으니!”
여전히 중년의 사내는 미동조차 없다. 마치 돌부처가 된 듯 숨결 조자 드러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사모님! 내일 모래가 발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시려면 내일까지 부검 실시 여부를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나머지 절차는 저희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결정하시는데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리고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
“소리 좀 줄여봐!”